학교운동장 동호회엔 활짝… 주민에겐 빗장
입력 2013-09-26 05:01
경기도 K초등학교 5학년생 자녀를 둔 A씨는 아이들과 토요일에 학교 운동장을 방문했지만 경비원으로부터 제지를 당했다. A씨가 이 학교 학부모라고 밝히자 경비원은 5학년생 둘째아들만 들여보내고 중학생인 장남과 A씨는 막아섰다. 둘째아들 혼자 운동을 하거나 그게 싫으면 모두 나가라는 식이었다. A씨가 학교 측에 항의하자 인조잔디가 망가진다는 이유 등으로 일반인에게 개방하지 않는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A씨는 “돈을 내는 조기축구회에는 운동장을 내주면서 학부모나 동네 주민의 출입을 막는 게 말이 되는가. 학교가 운동장을 가지고 장사를 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일부 학교들이 스포츠 동호회 위주로 운동장을 개방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어 주민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정부가 생활스포츠 활성화를 위해 학교 시설을 주민들에게 개방하도록 유도하고 있지만 학교들이 이를 이용해 돈벌이를 하면서 정작 학부모들과 인근 주민들은 냉대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와 주민들 간 갈등이 불거지고 있지만 교육 당국은 나 몰라라 팔짱만 끼고 있다.
지난 21∼25일 기자가 돌아본 서울시내 학교 중에는 K초등학교처럼 주민들에게 개방하지 않는 학교들이 적지 않았다. 주민들은 “학교 측이 허용해도 막상 운동을 하려고 하면 스포츠 동호회원들이 막아서는 일이 잦다”고 전했다. 실제로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는 운동장 사용을 놓고 다툼이 벌어졌다. 지난달 9일 B씨는 학교 운동장을 찾았다가 이미 운동장을 사용하고 있던 조기축구회 회원들과 시비가 붙었다. B씨가 한쪽 구석에서 운동을 하자 조기축구회의 한 회원이 욕설을 내뱉으며 “다쳐도 책임 못 진다. 이미 돈을 내고 계약을 했다”고 쫓아내려 한 것이 발단이 됐다.
스포츠 동호회가 통상 1년 단위로 학교와 계약하기 때문에 주민들에게 기회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방에서 학교를 다니다 졸업을 하고 서울로 올라온 남궁헌재(26)씨는 서대문구 집 근처 초등학교에서 친구들과 축구를 하려고 예약을 하려 했지만 조기축구회로 시간이 채워져 있어 다른 곳을 알아봐야 했다. 그나마도 사용할 수 있는 운동장이 없어 일산까지 가서야 운동장을 예약할 수 있었다. 남궁씨는 “대부분 조기축구회들이 1년 단위로 예약을 해놓기 때문에 운동장 잡기가 하늘의 별 따기 수준이다”고 말했다.
당국은 수수방관하고 있다. 운동장 사용은 학교장 권한이라는 이유로 적극적인 중재보다는 접수된 불만사항을 해당 학교에 전달해주는 역할에 그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운동장을 빌린 측에서는 전체를 다 빌렸다는 생각이 강해 학생이나 주민들을 못 들어오게 하는 경우도 있다”며 “학교 측에 확인하고 학교 차원에서 조치하도록 하지만 1주일에 한 번꼴로 민원이 들어오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