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유엔총회 기조연설 45분 중 35분가량을 중동에 할애했다. 이란 핵개발 프로그램, 시리아 화학무기 사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이집트 정정 불안 등이 연이어 언급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가 집계한 오바마 대통령 연설에서 언급한 나라의 횟수는 더욱 이런 ‘쏠림’을 보여준다. 이란 26차례, 시리아 21차례, 이스라엘 15차례, 팔레스타인 11차례, 중국은 겨우 1차례, 북한·한국·일본·인도 등은 전무(0).
2011년 오바마 행정부의 새로운 안보외교 전략으로 발표된 ‘아시아 중시(Pivot to Asia)’나 재균형(reblancing) 정책은 어디로 갔느냐는 질문이 나올 만하다. FT는 이와 관련, 오바마의 유엔 연설은 2기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전략의 초점이 중동이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우선 시리아 사태와 이란 핵문제 등 미국의 ‘핵심 국익’이 걸린 상황이 급박하게 전개되고 있는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행정부의 안보 자문을 맡았던 브루스 리델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시리아 문제가 계속 터지는 상황에서 (미국이) 관심을 중동에서 다른 곳으로 돌리기가 매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란 핵문제가 오바마 연설의 핵심이었던 반면 북한 핵무기는 언급도 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SAIS)의 알렉산더 만수로프 교수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내부적으로 원유 등 자원이 풍부하고 인구가 8000만명에 육박하는 중동의 강국인 이란이 핵무기를 가질 경우 북한과 비교할 수 없는 중대 사안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이슬람국가의 핵무기 보유가 갖는 폭발성을 미국 정부는 크게 우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미 존 케리 국무장관이 취임하면서 아시아 중시 전략의 약화가 시작됐다는 지적도 있다. 전임 힐러리 클린턴 전 장관이 재균형 정책을 발표하고 힘을 실은 반면 케리 장관은 이·팔 평화협상 등 중동문제에 ‘올인’하는 듯한 행보를 보여왔다.
오바마 행정부가 겉으로만 ‘아시아로의 외교 중심축 이동’을 내걸었지 실제로는 아시아 주둔 미군의 예산을 삭감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25일 워싱턴의 헤리티지재단에서 ‘어떤 아시아 중시전략?’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세미나에서 데이비드 윈터 전 해군장관과 버나드 콜 미 국방대학 교수 등은 국방예산 감축과 각종 자원의 미비로 아시아 중시 국방전략이 흔들리고 있다는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오바마 대통령은 다음달 초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필리핀을 방문하는 등 연내 두 차례 아시아 순방에 나서지만 외교 우선순위를 아시아로 돌리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리처드 부시 동북아센터 소장은 “미국이 태평양 지역에 한두 개의 항공모함 전단을 동시에 배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지 못할 경우 이 지역 우방들의 미국에 대한 인식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데니스 핼핀 SAIS 초빙연구원은 “오바마 행정부의 새 안보전략 발표 이후 호주의 다윈에 미 해병대원 300명이 파견된 것이 추가 자원 배치의 전부”라면서 “아시아 중시 전략은 신화(myth)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
아시아→ 중동 무게이동? 오바마, 외교 변화 시사
입력 2013-09-25 18: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