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초연금 최종안 확정] 4억6000만원 넘는 집 가진 老부부 소득 없어도 못받아
입력 2013-09-25 18:06 수정 2013-09-25 22:10
공약 파기는 복지공약 후퇴에 대한 전방위 반발로, 국민연금 가입자 역차별은 세대갈등 논란으로. 25일 확정 발표된 기초연금 정부안의 불씨가 사방으로 튀고 있다. 정부안은 소득 하위 70%의 노인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되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길수록 액수를 줄이는 방식이다.
◇기초연금, 누가 얼마나 받나=기초연금 지급 대상에서 탈락하게 될 ‘소득 상위 30%’(207만명)를 가르는 기준은 현재 기초노령연금과 동일하다. 지금 기초노령연금을 받고 있다면 내년에도 받을 가능성이 높다. 1인 가구 기준으로 소득인정액 월 83만원이 커트라인이다. 부부라면 월 133만원 미만은 탈락이다. 부동산을 기준으로 할 경우 공시지가 4억6000만원 이상 주택을 보유한 부부는 소득이 0원이어도 기초연금을 받지 못한다. 1인 가구의 경우 3억원으로 낮아진다. 금융자산만 있다면 부부는 3억4000만원, 1인은 2억2000만원이 기준선이다.
하위 70%에 들었다면 받는 돈은 ‘20만원-α’로 계산된다. ‘α’는 국민연금 가입기간으로 결정된다.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12년(현재 기준)에서 15년(2028년 기준)이 될 무렵 돈이 깎이기 시작해 20년(현재)∼30년(2028년)에 도달할 즈음 하한인 월 10만원으로 떨어진다. 대략 1년마다 1만원 정도 줄어든다고 보면 된다.
국민연금 10년 가입자로 월 21만5900원의 연금을 받는 서울 박모(65)씨를 보자. 현재 기초노령연금 약 10만원을 받는 박씨는 내년 7월부터는 두 배 인상된 20만원을 손에 쥔다. 만약 박씨가 2년 더 가입했더라면 국민연금액은 늘겠지만 대신 기초연금은 1만원쯤 깎인다. 국민연금의 역사가 길어지면 가입기간 20년을 넘기는 사람은 불어난다. 장기적으로 20만원 전액을 받는 이들은 줄고 정부가 부담해야 할 예산도 절감된다.
◇국민연금 연계안, 이게 최선인가=가입자들이 정부 희망대로 움직일지는 미지수다. 사람들이 만약 가입기간을 채운 뒤 국민연금에서 빠져나가는 다른 선택을 할 경우 결과는 암울해질 수 있다. 그런 걱정을 하는 배경에는 역차별 논란이 있다.
가입기간이 길수록 기초연금을 줄인다는 건 생활비를 쪼개 연금을 성실히 납부해온 이들을 역으로 차별하는 것이다. 장기 가입자에게 불이익을 준다면 누가 국민연금을 유지하려고 하겠는가. 가입기간 12∼15년을 기점으로 국민연금 탈퇴 사태가 벌어지지 않겠나. 우려하는 이들의 주장이다.
공교롭게도 득실이 세대별로 갈린다. 현재 직장가입자의 평균 가입기간은 109개월로 10년이 안 된다. 2020년 후 가입자 평균 가입기간은 20년, 2070년에는 28년까지 높아질 전망이다. 현재 수급자는 대부분(90%) 20만원을 받지만 미래 수급자 다수는 반토막난 10만원을 받게 된다는 뜻이다.
물론 투자 대비 수익의 측면에서 국민연금은 무조건 남는 장사다. 국민연금은 낸 돈에 비해 많이 받는 구조여서 기초연금을 조금 깎이더라도 길게 가입하는 게 이익이다. 당장 먹고사는 게 걱정없는 이들에게는 그렇다. 30세에 취업해 15년간 직장생활을 하다 실직하고 일용직 노동자가 된 45세 홍길동씨를 가정해보자. 10만원 생활비가 아쉬운 4인 가족 가장 홍씨. 기초연금이 깎이지 않는 14년을 이미 채운 그에게 국민연금을 중단함으로써 기초연금 20만원을 지키는 동시에 당장의 보험료를 절약하는 건 현실적인 선택이 될 수 있다. 결과적으로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짧아져 홍씨 본인의 노후 보장에는 구멍이 생긴다. 하지만 홍씨에게 노후는 먼나라 일이다.
만약 일부 가입자들이 홍씨와 같은 선택을 한다면 정부안은 예산 절감의 목표는 달성하지 못한 채 국민연금제만 뒤흔들게 된다.
◇잠재적 동요층 110만명?=직장가입자(약 1100만명)뿐만 아니라 지역가입자(380만명)도 소득이 있으면 국민연금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원치 않는다고 맘대로 국민연금에서 탈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여기엔 허점이 있다. 지난 7월 기준 지역가입자 380만명 중 110만명은 사업자등록이나 과세자료 같은 공적 흔적이 전혀 없는 무자료자다. 현재는 스스로 소득을 신고해 보험료를 내고 있는 이들이 연금제의 망을 빠져나가겠다고 결심하면 막을 방법이 없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