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의 멋과 맛을 찾아 기적소리 울린다… 코레일 S-트레인 상업운전 시작
입력 2013-09-25 17:12
광주역을 출발한 S-트레인(남도해양관광열차)이 서서히 도심을 벗어난다. 황금색으로 물들기 시작한 전남 나주와 화순의 들녘이 차창 밖으로 스쳐간다. 보성 벌교에서 쪽빛 남해바다와 더욱 가까워진 S-트레인은 광양에서 섬진강을 건너 경남 하동역에서 잠시 거친 호흡을 고른다. 부산역에서 출발해 구포 진영 마산 진주를 거쳐 여수엑스포역을 향해 달리던 쌍둥이 S-트레인이 하동역 플랫폼에서 반갑다고 기적을 울린다.
S-트레인에는 마침표가 없다. 황금색 들판을 달릴 때마다 느낌표를 그리고 사람 그리운 간이역을 만날 때마다 쉼표를 찍는 S-트레인이 광주 도심을 빠져나와 첫 번째로 만나는 기차역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간이역으로 꼽히는 나주의 남평역.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로 시작되는 곽재구 시인의 ‘사평역에서’ 배경역으로 알려진 남평역은 전남도가 지정한 등록문화재이다. ‘차(Train)와 차(Tea)의 만남’을 주제로 남평역티월드갤러리로 꾸며진 아담한 역사는 이탈리아풍 건축물. 고독한 역무원들이 짬날 때마다 정성스럽게 가꿨다는 꽤 넓은 정원과 녹슨 철로, 그리고 역사 앞에서 반원을 그리는 철로의 곡선미가 나그네들의 시심을 자극한다.
광주에서 부산까지 경전선을 따라 남도 천리를 달리는 S-트레인은 정차하는 역에서 카쉐어링과 시티투어 등을 통해 주변 지역을 관광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남평역에서 자동차로 30분 거리에 위치한 나주목사 내아(관사)와 금성관은 한양과 너무나 닮아 소경(小京)으로 불리던 나주를 대표하는 관광지. 백성들에게 존경을 받았던 유석중 목사와 김성일 목사의 이름을 딴 내아의 방에서 민박을 하며 옛 정취를 만끽할 수 있다.
기관차 외관이 거북선을 닮은 S-트레인의 S는 남쪽(South), 바다(Sea), 느림(Slow)의 첫 글자 ‘S’를 따온 것으로 남도의 리아스식 해안과 경전선의 구불구불한 모습을 상징한다. 고속도로 발달로 여느 철도에 비해 구간개선 작업이 이뤄지지 않은 경전선을 달리는 S-트레인의 평균 속도는 옛 완행열차와 비슷한 시속 50㎞. 특히 곡선구간에서는 시속 30㎞로 달려 스크린처럼 넓은 창을 통해 남도의 풍경이 주마등처럼 생생하게 흐른다.
힐링실, 가족실, 카페실, 다례실, 이벤트실 등 객실 5량으로 구성된 S-트레인은 객실을 옮겨 다니며 특별한 경험을 하는 관광전용열차. 넉넉한 공간을 자랑하는 카페실에서는 남도의 별미를 담은 도시락을 맛볼 수 있고, 온돌 형태의 다례실에서는 탑승한 차(茶) 전문가의 설명을 들으며 다례체험을 할 수 있다. 이벤트실에서는 구간별로 부산 마산 진주 순천 광주의 공연단체가 탑승해 마임, 밴드, 댄스, 플래시몹, 통기타, 가야금, 색소폰 등의 공연도 곁들여진다.
그윽한 녹차향에 취해 차창 밖으로 흐르는 풍경을 감상하는 동안 S-트레인은 보성 득량역에 정차한다. 득량(得糧)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왜군과 대치하던 중 비봉리 선소에서 식량을 조달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 문화체육관광부 지원으로 ‘문화역’으로 변신한 득량역 앞에는 1970∼1980년대의 풍경을 오롯이 간직한 ‘득량역 추억의 거리’가 조성돼 있다.
‘득량역 추억의 거리’는 역전이발관, 장난감 가게, 득량상회, 득량역, 역전만화방, 득량초등학교, 다방 등을 기존의 빈집이나 빈 점포를 활용해 꾸몄다. 낡고 허름한 공간에는 그 시절의 소품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어 짙은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역 광장에 조성된 장터에서는 라면땅 등 추억의 군것질거리는 물론 보성 별미인 꼬막과 녹차도 맛볼 수 있다.
조정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인 벌교에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화교, 중도방죽, 남도여관, 김범우의 집, 홍교, 부용교 등이 벌교역에서 홍교까지 1㎞도 안 되는 도로를 중심으로 옛 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다. 조정래의 육필원고 등이 전시돼 있는 태백산맥문학관도 볼거리. 5일장으로 유명한 벌교장은 쫄깃쫄깃한 맛의 참꼬막을 비롯해 보성의 바다와 들판에서 나는 물산들의 집합장소.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열리고 있는 순천의 얼굴은 70만평의 갈대밭과 800만평의 갯벌로 이루어진 순천만.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에서 ‘안개나루(霧津)’로 불리는 대대포구는 순천만 여행의 출발점이다. 동천과 이사천이 합류하는 대대포구에서 탐사선을 타고 갈대밭에 둘러싸인 S자 수로를 달리는 재미가 그만이다. 대대포구의 무진교를 건너고 갈대밭 사이로 난 목교를 지나 용산전망대에 오르면 S자 수로를 중심으로 미스터리 서클처럼 펼쳐지는 크고 작은 원형의 갈대밭과 황금들판, 그리고 붉은색으로 단장한 칠면초밭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여수엑스포의 일부 시설물을 재개장한 여수도 볼거리와 즐길거리, 그리고 먹거리가 풍성한 고장이다. 여수엑스포 때 첫선을 보였던 아쿠아리움과 엑스포디지털갤러리(EDG), 스카이타워, 빅 오(Big-O) 등 4대 명물을 비롯해 바닷가 절벽 위 폐철도를 달리는 왕복 3.5㎞ 길이의 여수해양레일바이크도 인기. 여수항에서 배로 5분 거리에 위치한 경도는 섬 전체가 27홀 규모 골프장인데 조선시대 궁녀들의 유배지로 전해온다.
광양에서 섬진강 철교를 건넌 S-트레인은 하동역에서 잠시 정차한다. 섬진강 동쪽에 위치한 하동(河東)은 야생차의 고장. 섬진강을 거슬러 오르는 19번 국도를 따라 하동송림, 황금색으로 물든 악양들판과 평사리 최참판댁, 가수 조영남의 노래로 유명해진 화개장터, 쌍계사 등이 두루마리 그림처럼 펼쳐진다.
하동역을 출발한 S-트레인은 진주남강유등축제가 열리는 진주, 국화향기 그윽한 마산, 바다처럼 넓은 낙동강이 한눈에 들어오는 구포 등을 쉬엄쉬엄 달린다. 그리고 S-트레인이 잠시 정차하는 곳에는 만남과 이별이 교차하고, 그리움과 향수가 묻어나는 경전선 간이역들은 시골 고향집처럼 항상 그곳에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글·사진=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