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배준호] 기초연금안 수정이 주는 교훈
입력 2013-09-25 18:42 수정 2013-09-25 23:23
“공약 얽매이기보다 지속가능 제도 돼야… 4대 중증질환·무상보육도 재검토 필요”
지난해 대선 이후 8개월간 다수의 전문가들이 참여해 마련한 보건복지부의 기초연금 개편안이 확정, 제시됐다. 지급대상을 65세 이상자 소득 하위 70%로, 월지급액을 10만∼20만원으로 차등화하는 것으로 지금의 기초노령연금 대비 지급대상은 같고 1인당 지급액은 평균 2배 이상이다. 기초노령연금의 소득 하위 70% 기준은 2013년의 경우 소득인정액이 홀몸노인 83만원, 노인부부 132만8000원 이하다.
공약한 내용과 비교하면 지급대상이 30% 줄고 1인당 지급액은 최대 50% 축소돼 소요예산의 감소 폭은 2020년 44%, 2060년 75%나 된다. 예산이 줄어 제도의 지속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좋지만 문제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차등지급 기준을 소득인정액에서 국민연금액으로 바꿈으로써 노인 빈곤과 노후 소득불평등 해소 효과가 약해질 게 우려된다. 이제 기초연금법 제정 논의의 중심은 국회로 옮겨갈 전망이다.
첫째, 노후의 경제력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는 국민연금액 때문에 기초연금을 감액당하는 이들이 늘어 기초연금의 노인빈곤 해소 효과가 떨어진다. 소득인정액 기준 시 지원대상자 중 23%(2040년)에서 56%(2060년)가 탈락해 노인 빈곤률이 높게 지속될 수 있다.
둘째, 부부가구의 국민연금 합계액이 같은데 두 사람의 연금액이 달라 부부가구의 기초연금 합계액이 다르게 나오는 불평등이 발생하고, 기초연금의 소득재분배 효과가 모호하거나 역진적일 수 있다. 지금은 부부가구의 소득인정액에 따라 기초노령연금을 차등화하지만 국민연금액 기준 시 이를 합산해 차등화할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국민연금은 개인 단위 운영이 기본 철학이므로 합산 후 기초연금을 차등화하면 위헌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셋째, 현 기초노령연금 방식보다 소득대체율이 떨어지는 이들이 상당수 발생한다. 국민연금에 장기간(40년 이상) 가입한 평균 소득자는 2028년 이후 기초노령연금을 전액 받아 소득대체율이 40%에서 50%로 올라가지만 개편안에 따르면 기초연금이 깎여 50%에 못 미친다.
넷째, 이자, 배당, 임대소득 등 금융소득이 차등지급 기준에서 배제돼 노후 소득불평등이 증대되며 이는 기초연금의 도입 취지와 상충된다. 향후 경제의 저량화(貯量化)로 소득 구성에서 금융소득 등 재산소득이 증가하고 그에 대한 소득파악률도 더 높아질 터이다.
다섯째, 전업주부 중 일부는 배우자의 고소득 등으로 취업하지 않는데 국민연금이 없는 이들 전업주부 상당수에게 기초연금 만액을 주는 것은 ‘생활이 어려운 노인의 생활안정 지원을 통한 노후소득보장의 사각지대 해소’라는 기초연금의 도입 취지와 맞지 않다. 2040년 국민연금 수급자가 전체 노인의 54%, 세대 기준 80% 정도로 예상되므로 기초연금은 소득인정액 등을 토대로 계산한 세대 노후소득 부족액과 연계하는 게 합리적일 것이다.
공약에 얽매여 지속가능하지 않은 기초연금을 밀어붙이기보다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하고 후세대에 부담을 주지 않는 제도로 바꾸는 것은 지지받을 일이다. 또 이때 약자에 대한 약속을 최대한 지킨다면 반대할 국민이 많지 않을 것이다.
2040년대에는 인구가 줄고 노인인구가 전 국민의 35% 수준에 달한다. 기초연금처럼 국가의 재정창고 사정에 대한 깊은 생각 없이 약속한 4대 중증질환의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무상보육 등도 이번 기회에 재검토해 털고 가자.
아울러 책임 있는 정치가와 정당의 복지공약에서 실현가능한 재원 대책이 함께 제시되도록 법제화하거나 관행화하자. 그리하여 국민들이 공약(空約)을 남발하는 정치가와 정당을 구별하도록 유도하자. 1997년부터 네 차례 대선을 치르면서 복지공약의 허실을 학습해왔다. 박근혜정부의 기초연금 사례가 복거지계(覆車之戒) 아니겠는가.
배준호 한신대 대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