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지는 ‘복지후퇴’ 역풍… 국민연금으로 불똥튈까 촉각

입력 2013-09-24 18:24 수정 2013-09-25 01:20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 지급’을 내건 기초연금 공약파기가 확실해지면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정부는 현재 ‘내년 7월부터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월 최대 20만원의 기초연금을 차등 지급한다’는 수정안을 마련했다. 하한은 현재 기초노령연금 지급액(월10만원)으로 설정됐다. 차등지급의 기준이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될지, 소득이 될지는 오는 26일 공식 발표된다.

◇일전 준비하는 시민단체들=구체안은 나오지 않았지만 일단 약속파기만은 명백해진 상황이다. 시민단체들도 재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참여연대, 국민연금노조,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등 21개 시민사회단체가 모인 ‘국민연금 바로세우기 국민행동’은 24일 기초연금 공약파기를 ‘선거사기’로 규정하고 하반기 전면투쟁을 예고했다.

사회서비스노조 국민연금지부 이경우 정책위원장은 “지금까지 알려진 내용만으로도 정부안은 인수위안보다 후퇴했다. 어떤 변명을 내놓더라도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며 “대선공약 원안 그대로의 기초연금 도입을 하반기 핵심 의제로 선정해 끝까지 관철시키겠다”고 말했다.

◇어떤 안 나올까=정부가 대선 때 약속을 깬 건 맞지만 설계도에 따라 반발의 강도와 수위는 달라질 수 있다. 다만 현재로선 정부 희망대로 논란이 쉽게 가라앉기는 힘든 분위기다. 특히 정부안이 소득보다는 국민연금 연계안쪽에 무게가 실리면서 반발의 폭발력은 더 커질 전망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정부가 왜 국민연금이라는 뇌관을 건드리려는지 모르겠다”는 걱정이 흘러나왔다.

돈 차이가 큰 건 아니다. 사실 정부가 마음을 두고 있는 국민연금 연계안은 소득 기준보다 돈이 더 많이 든다. 보건복지부 재정추계에 따르면 ①국민연금 연계안(2014~17년 기준)은 36조1000억원으로 ②소득으로 지급액을 차등화한 방안(34조2000억원)보다 2조원 가까이 가격표가 비싸다. 다만 장기적으로 보면 그림이 달라진다. 2060년까지 소요재정을 계산하면 ①국민연금은 92조7000억원이 드는 반면 ②소득안은 212조7000억원까지 치솟는다. 대상자를 70%로 못 박은 ‘소득 기준’과 달리 ‘국민연금 연계안’은 장기적으로 수급자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으로 불똥 튈까=연계방식이 어떻게 결정되든 국민연금과 통합운영을 논하는 순간, 판도라의 상자는 열린다. 국민연금 때문에 기초연금을 깎인다고 판단하는 가입자들은 동요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대통령직 인수위 발표 당시 국민연금 무더기 탈퇴소동이 재연될 가능성도 높다.

당시 인수위는 오래 보험료를 낸 가입자를 우대하는 방식의 기초연금안을 내놓았다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인수위안에 따르면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짧은 저소득층이 차별받는다. 하루 살기가 빠듯한 저소득층 입장에서는 국민연금에 가입하지 않고 월20만원 기초연금을 챙기는 것이 유리하다. 정부안은 인수위안과는 달리 가입기간이 길면 연금을 깎는 방식이 논의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경우에는 성실 가입자의 역차별 논란이 생길 수 있다.

김원섭 고려대 교수는 “만약 사람들이 국민연금 때문에 받아야 할 기초연금 일부를 깎인다고 느끼면 감정적으로 반응할 거다. 자영업자 등을 중심으로 국민연금 가입의 인센티브가 줄어들지 않겠나”라며 “(국민연금 연계안은) 이제 막 정착돼가고 있는 국민연금 제도 자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