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 부진에 고개숙인 ‘샐러리맨 신화’ 박병엽 팬택 부회장 사의
입력 2013-09-24 18:09 수정 2013-09-25 01:14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리던 박병엽(51·사진) 팬택 부회장이 사임을 표명했다.
팬택 관계자는 “박 부회장이 회사 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채권단에 사의를 표명했다”고 24일 밝혔다. 박 부회장이 사의를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실적부진으로 보인다. 팬택은 올해 2분기에만 495억원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지난해 3분기부터 4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박 부회장의 건강이 좋지 않은 것도 사임의 이유로 꼽힌다.
박 부회장은 이날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에서 “역량이 부족한 경영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깊은 상처와 아픔만 드린 것 같다”면서 “이준우 대표를 중심으로 빠른 시장 변화에 대응해 새로운 팬택으로 거듭나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무급휴직 등으로 임직원이 고통을 분담하는데 자신이 자리를 보전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1987년 맥슨전자에 입사한 박 부회장은 91년 10평짜리 집을 담보로 대출 받은 4000만원을 자본금으로 팬택을 설립했다. 무선호출기(삐삐) 사업으로 회사를 키웠고, 97년에는 매출 762억원을 기록하기도 했다. 팬택은 현대큐리텔, SK텔레텍을 잇달아 인수하며 국내 휴대전화 시장에서 삼성전자, LG전자와 경쟁 구도를 형성했다. 2005년 LG전자를 누르고 삼성전자에 이어 2위로 부상하기도 했다. 2006년 12월 실적부진으로 워크아웃이 결정됐지만 스마트폰 시장에서 발 빠르게 대응하며 4년 8개월 만에 워크아웃을 졸업하기도 했다.
박 부회장은 위기의 순간에 이르면 정면 돌파를 하는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해 왔다. 2009년 퀄컴이 로열티 미지급금 7626만 달러를 요구하자 “팬택이 망하면 퀄컴도 좋을 게 없다”는 논리로 퀄컴을 대주주로 끌어들여 미지급금을 출자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올해도 스마트폰 시장 경쟁자인 삼성전자로부터 530억원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박 부회장의 사의 표명이 또 한 번의 승부수가 아니냐는 분석을 내놓는다. 2011년에도 한 차례 사의를 표명했다가 1주일 만에 복귀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채권단과 갈등 때문이었고, 이번에는 경영책임이라는 점에서 사의를 철회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 부회장의 사임이 결정되면 팬택은 지난 3월 공동대표로 선임된 이준우 부사장이 이끌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공동대표 선임 당시 박 부회장은 투자 유치와 브랜드 제고에 집중하고 회사 경영은 이 부사장이 담당하기로 한 바 있어 표면적으로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팬택에 녹아 있는 박 부회장의 DNA는 당분간 지워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박 부회장 사임과 함께 팬택은 오는 4분기 흑자전환을 목표로 고강도 사업 혁신을 추진할 계획이다. 전체 직원 3000여명의 30%가량을 대상으로 6개월 무급휴직을 실시할 예정이다.
이 부사장은 사내 게시판을 통해 “국내 사업의 경우 라인업을 축소하고 제품 경쟁력을 높여 수익구조를 개선할 것”이라며 “당분간 해외 사업은 점진적으로 줄여 적자구조 탈피에 주력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