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프리미어리거가 될순 없잖아요”… 역경극복 펄펄 나는 두 사나이

입력 2013-09-24 18:04


축구화를 살 돈이 없어 맨발로 공을 찼고, 인종차별을 당하고는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들은 역경에 굴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히 맞섰다. 힘든 시간을 이겨 내며 더욱 강해진 그들은 마침내 정글 같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했다. 사우샘프턴FC의 미드필더 빅토르 완야마(22·케냐)와 토트넘 홋스퍼의 미드필더 파울리뉴(25·브라질)의 이야기다.

◇맨발의 축구선수 프리미어리거 되다=완야마는 지난 7월 스코틀랜드 프리미어리그 셀틱FC에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사우샘프턴으로 이적했다. 이적료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영국 공영방송인 BBC는 1250만 파운드(약 216억원)로 추정했다.

완야마는 셀틱에서 총 61경기에 출전해 10골을 기록했다. 이전엔 벨기에 리그 베이르스홋AC에서 총 50경기에 출전해 2골을 넣었다. 그는 한 경기를 치른 뒤 스타로 떠올랐다.

지난해 11월 8일(이하 한국시간) 열린 셀틱과 세계 최강 FC바르셀로나와의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예선 경기. 완야마는 헤딩 선제골을 기록하며 셀틱의 2대 1 승리를 이끌었다. 당시 그가 보여 준 엄청난 활동량과 놀라운 수비능력에 팬들은 경악했다. 그러나 완야마가 맨발로 뛰어 프리미어리그에 입성했다는 사실을 아는 팬들은 많지 않다.

완야마는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가 너무 가난해 그는 축구화도 없이 맨발로 공을 찼다. 완마야는 최근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아프리카에선 대개 아이들이 축구화 없이 축구를 시작해요. 요즘은 스폰서들과 후원자들이 많아 상황이 달라졌죠.” 완야마는 11살이 됐을 때 맨발로 경기에 나서 첫 축구화를 상으로 받았다고 했다. “노란색 푸마 축구화였는데, 아직도 기억나요.”

이번 시즌 사우샘프턴의 주전으로 자리를 잡은 완야마는 “모든 경기가 내겐 도전”이라며 각오를 다졌다. 그는 지난 2007년부터 케냐 대표선수로도 활약해 오고 있다.

◇인종차별에서 오히려 교훈을 얻다=파울리뉴는 17세였던 2006년 FC빌니우스(리투아니아)에 입단했다. 브라질 출신의 그가 경기장에 입장하면 관중은 동전을 던지며 일제히 원숭이 소리를 냈다. 어린 나이에 인종차별과 싸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당시의 경험이 인격 형성에 도움이 됐다고 했다. “난 무척 어렸던 데다 너무도 다른 환경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역경을 맞았습니다. 힘들었지만 헤쳐 나가고 싶었고, 많은 교훈을 얻었어요.”

파울리뉴는 상파울루의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임신 중이었던 어머니 에리카를 두고 집을 나갔다. 그는 헌신적인 어머니와 새아버지의 도움으로 리투아니아로 갔다. 빌니우스에서 한 시즌을 보낸 그는 폴란드 1부 리그의 LKS 우치로 이적했다. 하지만 폴란드에 불어 온 경제 위기 때문에 브라질로 돌아가야 했다.

브라질에서 생활고에 시달린 파울리뉴는 축구를 포기하려고 했다. 그에게 힘을 불어넣은 사람은 임신 중이었던 그의 아내 바르바라였다. 바르바라는 파울리뉴에게 “그건 옳지 않은 결정이다. 부모님이 너무 힘들게 축구를 시켰는데 이제 와서 축구를 관두는 건 모두에게 부당한 일이다”고 설득했다. 파울리뉴는 브라질 명문 코린티안스에서 167경기에 출전해 34골을 넣으며 스타로 떠올랐다.

2013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브라질의 우승을 이끌었던 파울리뉴는 지난 7월 토트넘으로 이적했다. 이적료 1700만 파운드(약 293억 원)에 계약 기간은 최대 5년으로 알려졌다.

파울리뉴의 팔엔 문신이 잔뜩 새겨져 있다. 오른팔에는 ‘신이 행하시는 모든 일은 영원하다’라는 글귀가 쓰여 있고, 왼팔에는 ‘내겐 약속이 새겨졌다’라고 적혀 있다. 어머니 이름은 오른쪽 팔뚝에, 양 손목에는 아내와 딸 아나 베아트리즈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역경을 이겨 내게 한 힘은 신앙과 가족의 사랑이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