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SC 고위관리 “북한, 핵 보유” 발언… 美 안보전략 北核 폐기 대신 非확산으로 전환 가능성
입력 2013-09-24 18:00 수정 2013-09-24 22:38
벤 로즈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의 ‘북한 핵 보유’ 발언은 이란과 북한의 핵 개발 단계가 다름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뉴욕타임스(NYT)는 24일자에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다음주 유엔 총회에서 이란과의 핵 협상은 북한의 사례처럼 ‘함정’이 될 것이라는 요지로 연설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하산 로하니 신임 이란 대통령의 외교 공세를 받아주면 북한처럼 핵 개발 시간만 벌어주는 꼴이 될 것이라는 게 네타냐후 총리의 경고다.
이처럼 이란을 북한에 비교한 것이 적절한지를 묻는 질문에 대해 로즈 부보좌관은 “이란과 북한 모두 비확산에 관한 국제 기준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해 보이지만 이 둘을 비교할 수는 없다. 북한은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미 행정부 고위 당국자가 공식 석상에서 북한이 이미 핵무기를 갖고 있다고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미국은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파장이 일자 백악관 패트릭 벤트렐 NSC 부대변인은 23일 밤 “북한 핵문제에 대한 미국의 기존 입장에 전혀 변화가 없다”며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해온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계획이 없다”고 해명했다.
실제 로즈 부보좌관 답변의 맥락을 살펴보면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지는 않다. 국제사회가 이란에 대해서는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도록 해야 하는 반면 북한에 대해서는 이미 개발한 핵무기를 폐기(비핵화)하도록 하는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북한 핵 능력에 대한 미 행정부의 현실적 판단이 드러났다는 점에서 가볍게 볼 수 없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간단히 말해 미국은 공식적으로 북한을 핵 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을 뿐 실제로는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평가’하고 국방안보전략을 짜고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실제 미 국방부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대비해 본토 미사일 방어망을 늘리는 등 북한 핵무기에 대한 본격적인 대비에 들어간 분위기다.
이렇게 되면 북한의 비핵화가 여의치 않을 경우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암묵적으로 인정받는 인도와 파키스탄, 이스라엘의 전례에 따라 미국이 핵무기의 폐기 대신 사용과 확산을 억제하는 정책으로 전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욱이 이 시점에 핵무기용 원심분리기의 핵심부품인 육불화우라늄, 진공펌프기, 원형자석, 주파수 인버터, 마레이징 강철, 컴퓨터 수치제어 유동성형 기계 등을 북한이 모두 자체 생산하는 것으로 파악됐다는 분석이 나와 대북한 비핵화 전략이 꼬여갈 공산이 크다.
군축 전문가인 조슈아 폴락 연구원은 “북한이 국내에서 원심분리기를 만드는데 필요한 핵심부품들을 자체적으로 제조하고 있다면 수출통제와 제재, 차단과 같은 현행 대북 정책이 이미 한계에 다다랐음을 의미한다”며 “북한의 우라늄 농축을 막을 수 없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