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대기업들 “버리자니 아깝고 하자니 부담되고”… ‘계륵’ 드러그스토어

입력 2013-09-24 17:43


대기업의 드러그스토어 사업이 펼칠 수도 접을 수도 없는 ‘계륵’ 신세가 됐다. 롯데, 신세계, CJ 등 유통 분야 대기업들은 드러그스토어를 운영 중이다. 골목상권을 죽인다는 비판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조용히 새 브랜드를 열고 점포를 확대하거나 리뉴얼하고 있다. 드러그스토어는 소화제 같은 상비약, 건강보조식품, 화장품, 간단한 스낵류 등을 판매하는 형태의 유통 채널이다.

24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각 유통 대기업들은 대학가 등 대형마트가 들어설 수 없는 지역에서 상권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드러그스토어를 운영한다. 안테나숍(시장조사·수요조사·광고효과 측정 등을 목표로 운영하는 점포) 역할을 하는 것이다. 계열사간 멤버십 혜택을 미끼로 고정 고객을 많이 확보할 수도 있고 대형마트나 백화점보다 경기를 덜 타는 장점도 있다. CJ는 올리브영으로 국내 드러그스토어 시장을 열면서 그런 효과를 많이 봤다. 1999년 1호점을 낸 이래 승승장구하고 있는 올리브영은 올해 안에 매장 400개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신세계, 롯데 등 후발 주자들은 당장 수익이 나지 않더라도 드러그스토어를 접을 수는 없다는 입장이다.

드러그스토어에 제품을 납품하기 위한 업체간 경쟁도 치열하다. 드러그스토어에 익숙해진 10∼30대 연령층 소비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제품을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 드러그스토어에 납품을 시작한 한 중소 화장품업체 관계자는 “드러그스토어에 제품을 넣기 위해 작은 업체들은 영업력을 총동원해 전쟁을 치르고 있다”며 “드러그스토어에 제품이 있어야만 타깃 연령층에 제품을 알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드러그스토어를 운영하는 기업들은 사업 확장 계획에 대해서는 보류 상태다. CJ가 압도적인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시장 상황을 뒤집기가 쉽지 않은 데다 중소상권 침해 여론, 정부의 눈치도 부담이다.

지난 5월 홍대에 드러그스토어 ‘롭스(LOHBS)’ 1호점을 연 롯데는 현재 4개 매장을 운영 중이다. 대기업의 드러그스토어 사업 진출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을 의식해 크게 홍보를 하지 않았다. 롯데 관계자는 “오픈은 했지만 올해 안에 몇 개를 열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진행하는 것은 아니다”며 “지금은 테스트 단계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경쟁업체 견제 등의 차원에서 열긴 했지만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다”고 전하기도 했다.

드러그스토어 ‘분스(BOONS)’ 매장 5개를 운영 중인 신세계 관계자 역시 “분스가 수익 모델이 아니라 안테나숍의 의미가 크기 때문에 사업을 확대할지는 심사숙고하고 있다”면서 “다만 사업을 확대했을 때는 발판이 될 수도 있다”고 여지를 남겼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