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성태윤] 소외된 자에게 금융을

입력 2013-09-24 17:34


지난 2011년 부실 저축은행들이 영업정지되며 ‘저축은행 사태’가 발생했다. 그 이전부터 부실은 진행된 상태였고, 정책부재 및 감독소홀 문제는 이미 제기됐다. 특히 저축은행이 본래 취지인 지역밀착형 서민금융기관을 벗어나면서 예고된 비극이었다.

소외된 지역·계층을 중심으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취지였던 저축은행이 고위험을 추구한 것이 부실의 가장 큰 원인이었고, 이를 제대로 감독하지 못한 감독 당국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결과적으로 많은 저축은행이 부실화되며 저소득 계층 및 지역에 제공될 수 있는 금융서비스 폭이 줄었다.

물론 특정 지역·계층을 중심으로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한 논의도 있다. 즉, 서민금융기관이 지속가능한지에 대한 질문이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지역 재투자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역 재투자법은 차별적 대출을 줄이고 공정한 계약이 이루어지도록 하며, 특히 지역사회에서 수취된 예금의 일정 부분을 해당 지역에 대출해서 금융기관 영업 지역의 신용 수요를 충족시키는 조처다.

결국 서민금융기관 여부와 관계없이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저소득층 및 소수집단 지역에 대해 암묵적 금융 지원을 하도록 만드는 것인데, 이의 준수 여부를 감독 당국이 확인하고 각종 인허가에 반영해 지역사회를 위한 금융서비스 공급을 가능하게 했다.

대표적인 자본주의 금융체제를 가지고 있는 미국에서 시행되는 지역 재투자법은 시장경제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소외된 지역·계층에게 금융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례다.

물론 미국 내에서도 이러한 대출이 금융 부실을 야기하는 것은 아닌지 논의가 있었다. 연구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지역 재투자법의 경우 대출 차별 행위를 줄이고 금융 소외를 완화시킨 효과가 컸으며 금융위기 내지는 부실 대출과 직접 연결됐다고 보긴 어렵다는 최근 긍정적인 평가가 많이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반 금융기관의 부실은 최소화하면서 소외계층에게 금융 혜택을 강화하는 이러한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저소득 계층 및 지역에 대해 특정 개별 금융기관이 모든 위험을 지는 투자는 경제적 타당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개별 금융기관에 의존한 서민금융 혜택과 지역사회 투자는 실제로 제한적이고 현상유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또는 이를 지나치게 확대하다보면 위험이 커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다수의 금융기관들이 동시에 시장에 진입하도록 유도함으로써 먼저 시장에 진입하는 특정 개별 금융기관의 위험부담 및 비용을 줄이고 여러 금융기관이 그 위험을 나누도록 설계한 것이다.

즉, 모두 함께 이용할 수 있는 공공재적 시설물을 선도적으로 설치해 개별 투자를 이끌어낸 것과 동일한 맥락이다.

결국 소외된 이들에게 금융 혜택을 제공하는 의도를 여러 금융기관의 경제적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투자로 이끌어냄으로써 소외계층에게 지속가능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한 시도인데, 우리도 유사한 맥락에서 지역사회 투자와 서민금융 효율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정부에서 일종의 공공 목적을 가지고 과세 혜택을 제공한 금융상품의 경우는 이렇게 수취된 자금의 일정 부분을 지역사회 투자 및 소외계층 대출 지원에 사용토록 하는 것과 같은 방식이 대표적인 사례가 될 수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