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선 목사의 시편] 인생을 허비한 죄
입력 2013-09-24 17:04
스티브 매퀸과 더스틴 호프먼이 출연한 ‘빠삐용’이라는 오래된 영화를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억울하게 살인자라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수감된 빠삐용은 위조 지폐범 드가를 만나 우정을 나누던 중 탈옥을 시도하다 실패합니다. 그로 인해 2년 동안 끔찍한 독방생활을 하지만 빠삐용은 희망을 버리지 않습니다. 다시 탈출을 시도한 빠삐용은 또다시 붙잡혀 5년 동안 독방 생활을 하게 되지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은 그는 결국 가장 끔찍한 감옥으로 가는데 그곳은 악마의 섬이라고 불리는 무인도입니다. 그는 탈출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던 무인도의 감옥에서 연구를 거듭한 끝에 결국 탈출에 성공합니다. 영화는 한 인간의 자유에 대한 절절한 갈망을 심도 깊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습니다.
독방 생활 중이던 빠삐용이 어느 날 꿈을 꿉니다. 빨간 망토를 입은 심판관 앞에서 자신은 사람을 죽이지 않았다며 무죄를 주장합니다. 그러나 심판관은 그의 억울한 살인죄를 다루지 않습니다. 심판관은 빠삐용이 생각도 못한 죄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인생을 허비한 죄’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의 결과는 죽음이라고 선언합니다. 자신의 살인죄에 대하여 무죄를 주장하던 빠삐용도 심판관의 이런 지적 앞에 꼼짝 못하고 자신의 유죄를 인정하고 받아들입니다. 꿈에 등장한 심판관은 인생을 허비한 죄는 인간이 저지를 수 있는 최악의 죄라고 지적합니다. 이 꿈 속의 판결은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이 장면에서 많은 도전을 받았습니다. 과연 내 인생에서 허비되는 구석은 없는지를 생각했습니다. 돈 한 푼도 허비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정작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인생이 허비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는 생각도 못하고 지내는 삶에 큰 도전이 되었습니다. 이런 저런 핑계로 인해 해야 할 일을 미루고 미루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보내는 시간들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들은 사는 동안 늘 인생을 허비한 죗값을 치르며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허비한 시간들이 쌓여 후회할 일이 많아지고 또 기회가 와도 선뜻 나설 자신감을 잃고, 손에 쥐어줘도 잡을 힘조차 없는 삶이 그 죗값을 치르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9월의 마지막 즈음에 서서 세월이 빠르다며 혀를 찰 것이 아니라 시간의 부가가치를 얼마나 높여왔는지 묵상하고 싶습니다. 누구에게나 똑같고 공평한 시간은 아닙니다. 조금만 눈을 돌리면 인생을 허비하지 않고 시간의 부가가치를 월등하게 높인 사람이 보일 것입니다. 이 가을에 허비한 인생을 만회하기 위해 몸부림을 칩니다. 그 부끄러움을 씻어버리기 위한 새로운 출발선에 서고 싶습니다.
<산정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