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이석기 그룹은 反민주 좌파… 진보진영, 결별 선언해야”
입력 2013-09-24 17:06
민주화운동 하다 북한인권운동가→정치인 변신…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
대학시절 두 차례 투옥될 정도로 민주화운동에 열정을 쏟다가 북한인권운동가를 거쳐 현재는 정치인으로 변신한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 그는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이 표면화된 이후부터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학생운동 경험을 토대로 내란음모 사태에 대해 예리한 분석을 내놓자 언론사들의 인터뷰 요청이 줄을 잇고 있는 탓이다. 추석 연휴 직전, 지역구(부산 해운대·기장군을) 현안을 챙기고 해양수산부의 부산 유치를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그를 국회의원회관에서 만났다.
-이석기 부류의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나라에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의아한데요.
“1980년대에는 많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상당수의 생각이 바뀌었죠. 그리고 주사파 내에서도 북한과 관련해 쓴소리를 하는 그룹이 있었습니다. 반면 북한 실태를 외면한 채 북한이 선(善)이고, 정의라는 맹목적인 그룹도 존재했습니다. 이석기와 RO 멤버들이 후자에 해당됩니다. 그들에게는 특징이 있습니다. 성품은 착하고 순해요. 그러나 하나의 방침이 세워지면 과격해지고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대한민국에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된다고 보는지.
“RO 조직원은 140여명이라고 들었습니다. 다른 지하조직이 또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아마 1000명 내외는 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소위 ‘돌연변이’들이 생긴 원인은 뭘까요.
“가끔 사이비 종교집단이나 다단계 판매 집단에 빠져 건강과 재산을 탕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도되곤 합니다. 정상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되지만 한번 빠져들게 되면 쉽게 헤어 나오지 못하죠. 이석기와 같은 부류는 청년시절 사회주의나 주체사상에 심취한 뒤 외부의 어떤 정보도 자신에게 유리하게만 해석해버리는 사상적 경직성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운동권 특유의 강력한 조직문화와 본인들이 뭔가 올바르고 정의로운 일을 하고 있다는 자기만족 등이 어우러져 합리적인 사고를 못하는 거죠.”
-이들을 솎아낼 방법은 뭐가 있을까요.
“실현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북한이 민주화되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요. 그리고 국가정보원의 대북 수사권은 반드시 유지돼야 합니다. 대북 수사권을 없앤다는 것은 맹목적인 종북주의자들에게 고속도로를 깔아주는 격입니다. 아울러 새로운 가입자가 없도록 북한 실태 바로알기 교육을 강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을 추종하면 우리 사회에서 따돌림당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역사교육도 중요합니다. 북한에 정통성이 있고, 남한은 수치스러운 역사를 갖고 있다는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
-이석기 사건과 북한의 대남 공작기구인 노동당 225국에 포섭돼 인천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다 2011년 적발된 왕재산 간첩단 사건과 유사한 점이 있다고 말한 바 있는데요.
“세 가지가 비슷합니다. 첫째는 무장 준비입니다. 검찰 발표에 따르면 왕재산 간첩단 연루자들은 북한으로부터 인천의 행정기관과 방송국 등을 유사시에 장악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저유소 등에 대한 폭파 준비를 완료하라는 지령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결정적 순간에 총기를 사용해서라도 국가 기간시설을 폭파하는 방법으로 혁명을 완수하자는 등의 발언이 담긴 녹취록이 증거자료에 포함돼 있다고 하니 매우 유사하죠.
둘째는 활동자금 조달 방식입니다. 왕재산 간첩단이 사업체를 통해 활동자금을 마련했듯 이석기도 선거광고 대행사를 통해 활동자금을 마련한 것으로 보입니다. 셋째는 국회 진출 노력입니다. 왕재산 간첩단은 정치권에 거점을 마련하는 데 실패했지만 이석기는 국회에 입성했습니다. 북한이 꾸준히 정치권 진입을 주문해 왔다는 점에서 북한과의 연계성이 규명돼야 할 것입니다.”
-이석기 의원 제명에 반대한다고 들었습니다만.
“정확히 얘기하자면 반대한다는 게 아닙니다. 그는 이미 ‘식물 정치인’입니다. 재판이 완료되는 1년 뒤면 자연스럽게 국회에서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비례대표인 그를 제명할 경우 간첩 혐의로 복역한 적 있는 ‘제2의 이석기’가 국회의원 배지를 달게 돼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명보다 통합진보당 해산에 치중하는 게 옳다고 봅니다. 통진당의 위험성을 부각시켜 국민적 압력을 통해 해산하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통진당은 이번에도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습니다. 정상적인 정당이라면 이석기는 바로 제명입니다. 하지만 통진당은 감싸기로 일관했습니다. 또 RO 회합을 ‘당원들 모임’이라는 등 이 의원에게 알리바이까지 만들어주려 했습니다. 이 의원이 통진당의 대주주여서 그렇게 대응했겠지만 통진당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경각심을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이 의원 외에 통진당 소속 현역 의원 2명도 사법처리될 개연성이 큰 상황입니다.”
-위기에 처한 진보세력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이석기는 민주세력이 아닙니다. 반(反)민주세력이죠. 하지만 진보 진영은 그동안 좌파운동의 한 정파 정도로 봐왔습니다. 산업화 세력을 부정하면 모두 동지였던 것입니다. 민주당의 경우 지난 총선 때 ‘민주대연합’으로 부르면서 그들과 연대했습니다. 당시 반민주세력으로 봤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입니다. 부정 경선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혁명도 반민주적 방식으로 하자는 그들을 방치하고 나아가 조장한 측면도 있습니다. 따라서 민주당을 포함한 진보 진영은 민주적 좌파와 반민주적 좌파를 구분하는 선언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해주십시오.
“유럽의 경우 1951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있었습니다. 민주사회주의 선언이라고도 불립니다. 스탈린의 전체주의 독재 등에 반대하고, 민주적 사회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프랑스 공산당에서 사회당이 분리되는 등 유럽의 좌파는 계급투쟁과 폭력혁명을 부정하고 사회주의 이상을 의회주의를 통해 실현하려는 민주사회주의로 나아가게 됩니다. 우리 사회의 진보 진영은 이 선언을 되새기면서 입장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진보라는 울타리 안에서 반민주세력, 뿌리가 독재인 그룹이 기생해 왔다는 점을 통렬히 반성해야 합니다. 민주당은 현존하는 좌파 독재세력과도 싸워야 합니다. 이석기 체포동의안 처리 때 기권·무효가 31표 나왔다는 점을 반성하고 좌파 독재세력을 옹호하는 세력과도 싸우겠다고 밝혀야 할 것입니다.”
-하 의원은 학생 때 주사파 아니었습니까.
“아닙니다. 저는 김일성이나 김정일에게 충성 맹세를 하지 않았습니다.”
-생각을 바꾸게 된 계기는 무엇입니까.
“직접적인 계기라면 문익환 목사님의 죽음과 그 과정에서 보여준 북한과 종북세력들의 태도 등을 꼽을 수 있죠. 그리고 제 신념 중 하나가 ‘이념은 팩트(Fact) 앞에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과거에는 친북 성향의 NL 계열에서 학생운동을 했지만, 식량난을 비롯한 북한의 참혹한 인권상황이 알려지고 탈북자들의 증언이 이어지면서 북한과 북한 정권에 대한 제 시각을 전면적으로 수정하게 됐습니다. 그런데 사실,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제가 북한 민주화운동을 선택한 것은 ‘전향’이라기보다 민주화운동의 연장선에서 선택한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보는 게 정확할 것 같습니다.”
-최근 하 의원에게 ‘극우’라고 표현한 한 방송사에 정정보도를 요청했는데요, 본인의 이념 성향은 어떻다고 보는지요.
“정정보도를 요청한 것은 극우라든지 친일 등 특정인에게 낙인을 찍는 문화가 극복돼야 한다는 소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저의 이념 성향을 굳이 말씀드리자면 새누리당 내에서는 다소 왼쪽에 있다고 보면 될 듯합니다. 저더러 ‘극우’라고 한다면 저보다 오른쪽에 있는 사람들이 불쾌해하지 않을까요. 우파 인사들은 요즘도 종종 저를 ‘빨갱이’라고 비판합니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