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카드 소액결제 '高高'… 상인들 수수료 부담에 '苦苦'

입력 2013-09-24 05:58

지난 21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가게. 음료수를 집어든 손님이 카드를 내밀자 주인은 계산할 생각은 안 하고 난감한 표정만 짓는다. 손님이 다시 한 번 카드를 내밀자 머뭇거리던 주인이 결국 카드를 받아든다. 음료수 값은 1000원. 거듭 “카드밖에 없어 죄송하다”며 손님이 미안해하자 주인은 긴 한숨을 내쉰다.

주인과 손님 사이의 묘한 신경전은 인근 가게에서도 목격됐다. 카드로 600원짜리 소화제를 계산하려 하자 주인은 단번에 거절했다. “늦은 시간이라 약국 문도 닫았고 아파서 한 걸음도 뗄 수가 없다”며 손님이 통사정을 하자 주인은 마지못해 카드를 건네받는다.

카드 소액 결제 때문에 골치가 아픈 건 김밥집 주인도 마찬가지다. 서울 영등포 K김밥집 주인은 “4명이 밥 먹으러 와서 2만원어치를 먹고 나갈 땐 각자 5000원씩 카드로 긁고 간다”며 “내색할 순 없지만 (카드를) 긁을 때마다 나가는 수수료를 생각하면 정말 얄밉게 느껴진다”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카드 소액결제가 급증하자 영세 상인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23일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1만원 이하 결제 비중은 2011년 12월 31.9%에서 지난 6월엔 39.2%까지 늘었다. 카드평균결제금액은 지난해 신용카드와 체크카드가 각각 6만4850원, 3만2571원이었지만 지난 6월에는 5만9147원과 2만5690원으로 감소했다. 소비자들이 현금을 잘 가지고 다니지 않는 데다 불경기에 한 푼이라도 더 소득공제를 받기 위해 카드 이용이 빈번해진 탓이다.

점주들은 난감해한다. 서울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하는 김모씨는 “4년 전 가게를 시작할 때만 해도 사람들이 웬만하면 현금을 내려고 했다. 하지만 요즘은 죄다 카드를 내민다”며 “카드수수료, 세금, 임대료 등을 제하면 남는 게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53m 떨어진 곳에 기업형 편의점이 생긴 뒤로 손님이 훨씬 줄었다”며 “본사가 가맹점 수수료 일부를 부담하는 편의점과 동등한 경쟁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편의점은 가맹점주와 본사가 6대 4 또는 7대 3의 비율로 카드 수수료를 부담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일부 소비자들은 소규모 개인 사업장에서 소액 결제로 인해 얼굴을 붉히는 일이 왕왕 발생하면서 기업형 편의점이나 프랜차이즈 매장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직장인 박모씨는 “카드 수수료 때문에 어려운 건 알지만 내 돈을 내면서 소액이라는 이유로 미안해하고 눈치 보는 게 싫어 주로 프랜차이즈 업체를 이용한다”고 말했다.

카드사 역시 소액 결제는 반갑지 않다. 카드사는 결제 액수와 관계없이 건당 일정액을 카드결제 단말기를 운영하는 밴(VAN·Value Added Network)사에 수수료로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소액 결제가 늘수록 손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카드 소액결제의 증가세는 지속될 것으로 보이지만 대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2011년 정부가 신용카드 결제 가맹점 비용 부담을 이유로 1만원 이하 상품 구매 시 결제를 거부할 수 있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지만 반발이 심해 폐기 처분된 상태다. 소액결제가 많은 영세가맹점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결제 건당 부과되는 VAN 수수료 문제도 수술대에 올랐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박은애 기자 limitle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