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수정론 급부상] 현실과 약속 사이 딜레마… 朴대통령 ‘고민의 가을’

입력 2013-09-24 14:42


[뉴스분석] 대선공약 갈림길… 선택 어떻게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복지공약 수정 논란이 일파만파 확산되는 가운데 26일 직접 대(對)국민 설명에 나서기로 하면서 다시 이슈의 전면에 서게 됐다. 공약 수정이 확정된다면 박근혜정부는 출범 이후 최대 위기를 맞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약 후퇴 논란은 박 대통령의 정치적 자산인 ‘약속과 신뢰’ 이미지와 정면충돌하는 문제다. 지난 대선에서 승리한 결과로 출범한 현 정부의 정체성에도 치명적인 타격이 불가피하다. 여느 해 같으면 국무총리가 국무회의에서 예산안을 심의해 국회로 넘기지만 이번에 대통령이 주재하기로 한 배경에는 심각한 위기감이 깔려 있다.

청와대는 논란으로 떠오른 기초연금 최종안에 대해 일단 26일 정부 발표를 지켜보자는 입장이지만 공약 수정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앞서 박 대통령은 “국민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킨다”고 수차례 단언했고, 심지어 대선 당시에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그만이라는 태도”라는 말로 야권의 공약을 비판했다. 청와대는 대통령 취임 6개월을 앞두고 “출범한 이후 이렇게 공약을 지키려는 정부가 있었느냐”며 공약 수정론에 선을 긋기도 했다. 이 때문에 정권 출범 초반 어수선한 분위기 가운데에서도 ‘앞으로 잘할 것’이라며 대통령과 정부에 힘을 실어주는 여론이 탄탄해 국정운영 동력을 이어갈 수 있었다.

가뜩이나 야권과 장기간 대립하고 있는 박 대통령을 향해 부정적인 여론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호평 받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마저 꼬일 위기에 처해 있고, 후반기 국정운영 기조로 강조했던 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은 아직 가시화되지 않고 있다. 채동욱 검찰총장 사퇴를 둘러싼 정치적 외압 의혹 역시 끊이지 않고 있다.

고공행진을 이어가던 대통령 지지율이 국내외에서 불거지는 총체적인 문제로 하락세에 접어든 상황에서 공약 후퇴 논란까지 더해진다면 국정운영 동력 상실과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져 악순환이 현실화될 수 있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그야말로 ‘위기의 가을’ 문턱에 들어선 셈이다.

이와 관련해 새누리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가 지난 16∼20일 전국 성인남녀 387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자체 여론조사(신뢰수준 95%·표본오차 ±1.57% 포인트)에서 박근혜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62.2%를 기록해 일주일 전보다 4.5% 포인트 하락했다는 결과가 나왔다. 여당 내에서는 대선공약 수정론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관건은 박 대통령이 공약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경제적 현실’과 ‘그래도 정부가 최선을 다했다’는 입장을 국민들에게 어떻게 설득할지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23일 “(정부 발표와 대선 공약에) 차이가 나게 된다면 그래야 하는 명분이나 불가피한 이유가 있을 것이고 진지하게 국민들에게 납득할 만한 이유를 설명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날 매주 월요일 주재하던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포함해 공개일정을 전혀 잡지 않았다.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퇴 문제를 비롯해 공약 수정 문제를 고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대통령이 직접 나선다고 해도 효과는 미지수다. 지난달 세제 개편안 파동 때는 박 대통령이 정부에 원점 재검토를 지시하면서 국민들의 반발을 진정시켰지만 이번에는 정반대로 정부 입장에서 국민들의 이해와 협조를 구해야 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