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김명호] 한반도 상황관리
입력 2013-09-23 17:48
북한이 다시 몽니를 부렸다. 부모 자식간, 형제 자매간 60여년의 생이별은 단장(斷腸)이라는 말로도 표현하기가 부족하다. 달력에 동그라미로 60여년 만의 만남을 기다리던 이산가족들에게 북한은 또 피눈물을 흘리게 했다.
잘 진행되던 상봉 행사를 북한은 왜 틀어버렸을까. 노림수는 정확히 무엇일까. 이석기 사건이나 한반도 프로세스를 들먹였지만 그냥 틀어버리기 위한 명분일 게다.
상봉 연기 사태는 단순히 남북관계 차원에서만 볼 것은 아니다. 시야를 더 넓혀야 한다. 우선 작금의 한반도 주변정세를 세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김정은은 지난 2월 3차 핵실험을 강행한 이후 3∼4월에 전시상황을 선포하고 개성공단을 폐쇄했다. 한반도 위기를 한껏 고조시켰으나 중국으로부터는 싸늘한 경고를 받았다. 미국은 스텔스 전략폭격기 B-2를 한반도 상공에 보내 무력시위를 했다. 북한으로서는 겁먹을 만한 조치다. 김정은이 핵과 경제 병진정책을 밝혔지만, 시간이 갈수록 경제 쪽에 무게가 실린다.
대미관계 개선이 北 노림수
한반도 위기지수가 높아지자 중국은 북한을 상당한 수준으로 압박했다. 중국의 이익에 결코 부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은 아시아 중시정책을 펴고 있는 미국에 개입 여지를 더욱 확대시킬 수 있다고 봤다.
최근 남북을 포함한 6자회담 당사국들은 빈번한 접촉을 갖고 있다. 채찍과 당근으로 북한을 다독인 중국은 요즘 6자회담 재개를 부쩍 강조하고 있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주 중국 외교부 산하 국제문제연구소가 주최한 6자회담 10주년 기념 회의에서 의도적으로 회담 재개에 자신감을 표시했다. 그리고 워싱턴DC로 날아가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과 회담을 갖고 6자회담 재개 문제를 논의했다.
미국은 여전히 탐탁지 않은 반응을 보였다.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의미 있는 행동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충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한의 느닷없는 이산가족 상봉 연기 조치는 바로 이 직후에 나왔다. 북한의 몽니는 6자회담 재개를 요구하는 강력한 의사 표시일 가능성이 크다. 더 적확하게 표현하자면 미국과 대화 테이블에 앉고 싶은 것이다. 물론 한·미는 싸늘하다.
상봉 연기에 따른 남북관계 경색은 한·미 간 미묘한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역설적으로 북한이 이를 6자회담 재개의 동력으로 활용할 수 있다. 관련해서 왕이 외교부장의 주목할 만한 발언도 있다. 그는 지난 20일 워싱턴DC 브루킹스 연구소 연설을 통해 북한이 2005년 9·19 공동성명 합의에 복귀할 의사가 있음을 시사했다. 9·19 공동성명은 그동안 한·미가 꾸준히, 그리고 강력하게 요구해 오던 북한 비핵화 조치 등이 주요 내용이다.
북한은 상봉 행사를 미국과의 대화, 6자회담 재개와 같은 대미 관계 개선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1기 때와는 달리 지금 미 행정부의 외교 현안에서 북한 문제는 상당히 처져 있다. 케리 장관의 관심은 중동과 유럽에 집중돼 있다.
朴정부, 전략적 유연성 필요
지금 한반도 주변에는 미국의 대북 무시 전략과 북한의 대미 관계개선 전략, 아시아 안보에서 패권자적 위치를 고수하려는 중국의 중재 전략이 어우러지고 있다. 여기에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있다.
바야흐로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상황관리 능력에 정말로 내공이 쌓여 있는지를 볼 수 있는 판이 만들어지고 있다. 구도를 적군과 아군으로 판별하고, 상황을 작전으로 유지하며, 임전무퇴 정신으로 무장된 군 출신들이 한반도 상황과 미·중·러·일을 관리하는 외교·안보 분야의 실세들이다. 미덥지 않다. 박 대통령이 한반도 상황을 어떻게 관리할까.
김명호 편집국장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