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 수정론 급부상] 무리수 뒀다간 빚더미 우려… ‘공짜 복지’ 급브레이크

입력 2013-09-23 17:47 수정 2013-09-23 22:24


박근혜정부가 내세운 경제·민생 공약들이 표류하고 있다. 각종 불공정 행위로부터 경제적 약자를 보호하고 복지를 늘려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던 약속도 조금씩 멀어지고 있다. 정부가 본질적인 경제민주화를 배제하지 않은 채 경제 활성화를 추진하고, 현실성이 있도록 공약을 재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회에 발목잡힌 경제민주화=이번 정기국회는 경제민주화의 성패를 가르는 분수령이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를 비롯해 신규 순환출자 금지 등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과 관련된 경제민주화 논의가 ‘대기업 옥죄기’라는 여론에 밀리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여당은 지난 6월 국회에서 하도급법·가맹거래법·공정거래법 개정안 등 핵심 법안이 통과됐기 때문에 경제민주화는 일단락됐다고 본다. 특히 공정거래법의 경우 일감 몰아주기 규제 범위와 관련해 정부와 여당이 사실상 ‘대기업 편들기’에 나서면서 법 통과의 의미가 무색해지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당초 시행령에서 총수 일가 지분이 상장사는 30% 이상, 비상장사는 20% 이상인 기업을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으로 정했다. 다만 거래 상대방과의 거래액이 연간 50억원 미만일 경우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다. 하지만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새누리당 의원들은 23일 비공개 회의를 열고 지분율 기준은 공정위의 원안을 존중하되 거래액은 연간이 아닌 분기별 50억원 미만으로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시행령을 만드는 것은 정부부처 소관이지만 이마저도 국회의 눈치를 봐야 해 공정위의 일감 몰아주기 규제가 동력을 잃고 있다는 평가다.

공정위가 추진하고 있는 대기업 전담 조직은 논의조차 못 하고 있다. 대신 공정위는 최근 입찰 담합행위와 할부거래 피해 조사를 강화하기 위해 2개 과를 신설하는 수준의 소규모 조직 개편을 단행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경제민주화를 지속하려면 대기업 전담 조직이 필요하지만 우선 통과된 법 시행에 중점을 두고 있다”며 “지금은 전담 조직에 관해 논의하기가 부담스러운 분위기”라고 말했다.

◇기초연금·무상보육 등 복지공약 재조정=현 정부의 핵심 공약인 기초연금은 차등 지원으로 가닥이 잡혔다. 당초 공약은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의 연금을 지급하는 것이었지만 향후 4년간 최대 60조원에 달하는 재원 부담을 이겨내지 못했다.

무상보육도 재원 문제로 정부와 지자체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정부는 서울(20%→30%)과 지방(50%→60%)의 보육료 국고보조율을 각각 10% 포인트 올리겠다고 제안했지만 지자체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지자체들은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인 영유아보육법 개정안대로 국고보조율을 20% 포인트씩 올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새누리당과 기재부는 추가재원 부담을 우려해 이를 국가재정계획 틀 안에서 신중히 다뤄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대폭 축소된 지방공약=124조원 규모의 지방공약도 성사 여부가 불투명하다. 정부는 대선 때 내걸었던 공약사업 167개를 원칙적으로 모두 추진한다는 방침이지만 ‘말의 성찬’에 그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계속사업(71개)을 제외한 신규사업(96개) 추진에 84조원이 필요하지만 어려운 재정 여건상 공약 이행은 쉽지 않을 전망이다.

특히 지방공약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대폭 축소될 방침이다. 각 부처가 지난 7월 제출한 내년 예산요구안을 보면 SOC 예산은 21조2000억원으로 올해(24조3000억원)보다 12.9% 줄었다. 지방의 반발을 우려한 정치권의 요구로 감소 폭이 줄어든다고 해도 지방공약 이행에는 심각한 타격이다.

정부는 민간투자를 끌어들여 재원 공백을 메운다는 계획이지만 확실한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한 민간 재원을 활용하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세종=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