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원선] 격화되는 생물자원 전쟁

입력 2013-09-23 17:51


양양 점봉산 곰배령, 태백 분주령을 오르는 길에는 지금 숱한 가을 야생화들이 화원(花園)처럼 장관을 이루고 있다. 이 땅에 사는 국민이라면 누구나 우리 산과 들에 활짝 핀 꽃, 풀과 나무, 소리내어 울어대는 풀벌레들을 체험하며, 한번쯤은 동식물도감이나 인터넷 자료를 찾아보았으리라 생각된다.

이처럼 누구나 산과 들에서 관찰한 동식물의 정확한 정보를 알기 위해 각종 생물도감과 인터넷 자료들을 찾게 되는데, 이는 이전 세대 생물학자들이 생물의 종과 계통을 수십년 동안 연구 ·정리한 것이다. 즉 많은 학자들의 끊임 없는 관심과 각고의 노력이 축적된 결과물이다. 지금 지구상에 존재할 것으로 추정되는 500만 내지 3000만의 생물종 중 약 175만종의 서식만이 확인·보고되었고, 아직도 다양한 생물종을 발굴하기 위한 조사·연구는 계속되고 있다.

19세기 팽창하는 제국주의 체제하에 분류학을 발전시킨 미국, 영국 등 서구 열강들은 안전한 식량 확보를 이유로 식민지의 각종 생물자원을 수집 및 조사하고 그 표본들을 오랜 기간 연구해 왔다. 미국의 스미스소니언 국립자연사박물관은 1억2400만점, 영국의 런던 자연사박물관은 7100만점에 이르는 표본을 관리하고 있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국립생물자원관은 겨우 200만여점의 생물표본만을 보유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한반도에 분포하는 다양한 동식물이 19세기 말부터 미국, 일본 등의 학자들에 의해 채집되어 해외 반출되었는데, 현재 한반도 고유종 5000여종, 2만여점의 생물표본이 해외 15개 기관에서 관리되고 있다.

생물자원에 대한 국가의 소유권을 인정하는 생물다양성 협약의 채택과 나고야 의정서 발효를 앞두고 그린골드(Green Gold)라고 불리는 새로운 유형의 국가 자산인 생물자원을 둘러싸고 국제적으로 총성 없는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이미 선진국은 수백년간 축적된 분류학적 지식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생물자원의 산업화에 한발 앞서 나가고 있다. 잘 알려진대로 한라산과 지리산의 특산식물인 구상나무는 해외로 반출되어 크리스마스트리로 널리 상품화됐다.

그러나 생물산업 후발국가인 우리나라는 생물자원의 발굴·조사·연구를 위한 인프라 인력과 자원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들을 지원하기 위한 국가의 역할이 강화돼야 마땅하다. 이러한 시기에 정부에서는 생물자원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국립생태원을 발족하고, 국립낙동강생물자원관을 건립하고 있어 생물학자로서 기쁜 마음과 기대가 크다. 하지만 국가기관이 아닌 법인으로 운영할 계획이라는 소식에 우려를 지울 수 없다.

생물자원에 대한 발굴·조사·연구는 기초연구 분야로서 국가 공공재인 생물자원에 대한 기반 연구를 위해 국가에서 그 기능을 직접 수행해야 한다. 단순히 작은 정부의 이념 추구와 경제성 논리만으로 생물자원 관리 기관을 법인으로 운영한다면 자체 수익 창출을 위한 사업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 자생생물을 찾아내고 생물 특성 및 정보 등을 연구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미래에는 생물이 매우 중요한 산업자원이 되고, 그 자원이 국부를 창출하는 근원이 된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국가 생물자원 확보만이 치열해져가는 생물자원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이다. 창조경제를 선도하고, 고급 일자리 창출을 통한 환경복지 실현을 위해 국가의 장기적 투자 및 안목이 필요하다. 나라의 미래 자산인 생물자원의 발굴·조사·연구에 대해 국가와 국민 모두가 깊은 관심을 저버려서는 안 될 것이다.

김원선 (서강대 교수·전 생물과학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