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메르켈 총리 3선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
입력 2013-09-23 17:45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이끄는 집권 여당 기독교민주당·기독교사회당 연합이 22일 실시된 총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메르켈 총리는 2017년까지 12년간 집권하게 되면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11년을 넘어 최장수 여성총리가 된다. 메르켈 총리의 3선 연임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이번 총선에서 보듯 국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이념이 아니라 ‘빵’이다. 메르켈 3선 연임의 가장 큰 비결은 두자릿수 실업률, 재정악화, 급속한 고령화 등으로 ‘유럽의 병자’ 소리를 듣던 독일을 ‘유럽의 기관차’로 변신시킨 것이다. 메르켈 집권 8년 동안 독일은 연평균 약 2%의 경제성장을 기록했다. 2분기 성장률도 0.7%를 기록했고, 실업률은 5.3%로 유럽 국가 중 최저수준이다.
유럽 대부분 국가들이 재정적자로 신음하는 동안 독일이 나홀로 성장을 구가한 것은 당파를 초월한 메르켈의 실용주의 리더십 덕분이다. 메르켈은 원칙을 고수하며 포퓰리즘에 영합하지 않고 경제체질을 개선하는데 주력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사회민주당 전 정권이 중장기 사회·노동개혁 프로그램인 ‘어젠다 2010’을 내걸고 복지축소, 고용유연성 확대 등 정책을 펴자 국민들이 2005년 총선에서 사민당을 버리고 메르켈이 이끄는 기민당에 표를 몰아줬다. 하지만 메르켈은 슈뢰더 정책을 이어받아 연금 수령자의 연령대를 높이고 기업 해고요건을 완화하는 등 개혁의 강도를 높였다.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에도 여당 의원들이 재선 도전을 앞둔 메르켈에게 실업자를 위한 연금혜택을 늘리는 등 민심수습책을 내놓고 노동·사회개혁 속도를 늦추자고 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절대 안 된다”며 단호히 거절했다. 지난 대선 때 복지확대와 경제민주화를 내걸었다가 공약을 후퇴시켜 후폭풍을 맞고 있는 박근혜정부와 대비되는 모습이다. 중장기 복지정책이나 경제비전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위기가 닥치더라도 밀고 나가는 정책 일관성이 중요함을 시사한다.
메르켈이 보여준 통합의 리더십도 주목할 만하다. 메르켈은 2010년 엄청난 규모의 긴축 예산안을 편성하는 과정에서 연정 내 반대 세력은 물론 야당의 주요 인사, 노동계, 재계 대표들을 만나 “각자 조금씩 더 희생할 필요가 있다”며 수없이 대화하고 설득했다. 노조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따뜻한 보수주의자’가 메르켈 이미지다. 2011년 일본 원전사고 이후에는 독일 내 원자력발전소 폐기, 징병제 폐지, 가정복지 강화, 양성 평등정책 등 사민당과 녹색당의 주장을 전격 수용했다. 독선적이고 불통인 대통령보다 야당 주장이더라도 귀 기울이고 합리적인 부분은 수용하는 포용력 있는 지도자가 국민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