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흥우] 경계인

입력 2013-09-23 17:51

최인훈의 소설 ‘광장’은 주인공 이명준이 인도로 향하는 선상에서 푸르디푸른 바다에 스스로 몸을 던지는 것으로 갈무리된다. 분단문학의 걸작으로 평가받는 ‘광장’은 6·25 정전 후 남과 북 어디에도 가기를 거부한 국군 포로 2명과 인민군 포로 74명이 1954년 2월 인도행 배에 몸을 실은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다.

아버지가 월북한 빨갱이라는 이유로 남한에서 고초를 겪다 38선을 넘은 이명준은 6·25가 터지자 인민군으로 참전했다 포로가 된다. 해방 이후 남북을 모두 경험했던 이명준이 남과 북에 절망한 나머지 제3국행을 선택했으나 끝내 정체성의 혼란을 극복하지 못하고 자살한다는 비극적 내용이다.

재독학자 송두율씨가 37년 만에 귀국한 2003년 후반을 관통한 화두는 경계인이었다. 조선노동당에 입당하는 등 친북활동 혐의로 입국이 거부된 그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초청으로 귀국하자 국내에선 또 한바탕 이념 논쟁이 거세게 불어닥쳤다. 여론은 그를 간첩으로 몰아붙였고, 그는 경계인 논리로 자신을 변호했다. 그는 저서 ‘경계인의 사색’에서 “경계의 이쪽에도, 저쪽에도 속하지 못하고 경계선 위에 서서 상생의 길을 찾아 헤매고 있는 존재”라고 자신을 규정했다.

2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난 그는 “한국에 온 걸 후회한다”는 말을 남기고 2004년 8월 출국한다. 그리고 4년 후 대법원은 일부 혐의만 유죄로 인정하고 간첩 혐의 등 독일 국적 취득 후 방북활동 등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다.

김정은 체제 등장 이후 그 수가 줄어들긴 했으나 탈북자 입국은 이제 뉴스거리도 잘 안 되는 일상사가 돼 버렸다. 국내 정착 탈북자가 2만명을 넘으면서 남한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 11일 구속된 김광호씨는 한국에서 결혼해 딸까지 낳았으나 탈북 브로커와의 소송에서 져 임대주택 보증금이 압류되자 한국 생활에 실망하고 밀입북을 감행한다. 하지만 북한에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재탈북했다 중국 공안에 체포돼 국내로 송환됐다.

프로 축구 수원 삼성에서 뛰는 ‘인민 루니’ 정대세는 한국 국적의 북한 축구 국가대표 선수다. 그는 과거 언론 인터뷰 등에서 “내 조국은 북한”이라는 등 북한 체제를 찬양하는 발언을 여러 차례 했다. 한국인터넷미디어협회는 그런 그를 국보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경계인을 허락하지 않는다. 분단이 낳은 비극이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