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혜훈 (15) 주님께 모든 것 맡기니 ‘17대 국회 입성’ 선물을

입력 2013-09-23 17:29 수정 2013-09-23 23:33


공천에서 떨어진 후 고민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하나님의 음성을 어디서 놓쳤는가’였다.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인터넷 서점에서 영문판 한글판 가리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법’ ‘기도의 응답’ 등 유사한 검색어로 찾을 수 있는 거의 모든 책을 사서 읽었다. 무디, 스펄전, 뮬러 등 기도의 선인들이 사용했다는 방법들도 해봤다. A4용지를 반으로 접어 오른쪽에는 하나님 입장에서 ‘예’라고 응답할 이유를, 왼쪽에는 ‘아니요’라고 응답할 이유를 적은 뒤 더 긴 쪽을 택하라는 방법까지 따라해 봤다.

어느 날 38년 동안 수없이 읽었던 구절이 처음 읽는 것처럼 내 눈에 들어왔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시 119:105). ‘등은 통상 높이 달아야 멀리 훤히 비추는데 왜 발에 등이라고 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한동안 그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아 여기저기 찾아보던 중 어떤 집사님이 올린 글에서 실마리를 발견했다. 발에 등을 두면 한 발짝 앞밖에 보이지 않는다. 10m 앞, 100m 앞에 낭떠러지가 있는지 몰라도 하나님만 믿고 한 발짝 한 발짝 내딛기 원하신다는 뜻이었다.

이를 통해 내면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던 부끄러운 내 진짜 모습과 마주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겠다 하면서 실제로는 ‘하나님, 제가 경제학자로 살아갈 인생 30년과 정치인으로 살아갈 30년을 다 보여주세요, 어느 길이 더 편하고 맘에 드는지 보고 결정할게요” 하는 식이었다. 그랬으니 정치의 길을 가라고 응답 받았는데 왜 실업자가 됐느냐고 하나님 앞에 울고불고 했던 것이다.

하나님이 정치를 하라는 응답을 주셨다고 해서 공천 한 번 안 떨어지고 낙선 한 번 안하고 6∼7선까지 쭉 보장해준다는 뜻은 아니다. 응답 받았다는 확신이 있으면 길이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기로 결단을 내렸다.

얼마 뒤 17대 총선 시즌이 왔다. 보궐선거 공천을 신청했을 때 인상 깊게 본 몇몇 분이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하라고 연락해 왔다. 그 사이 당에는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 2002년 대선에서 참패한 후 ‘차떼기’ 사건으로 부패정당의 오명을 쓰고 있었기 때문에 젊고 깨끗한 후보를 내세워 개혁 이미지를 부각시키고 싶어했다. 여성들의 지지도가 낮다 보니 여성 후보가 필요했고, 당시 노무현정부의 경제 실정을 공격하는 선거 전략으로 ‘경제 살릴 한나라당’을 공식 캐치프레이즈로 채택했기 때문에 경제통이 필요했다. 젊은 여성 경제통도 구하기 힘든데 정치를 하겠다는 조건까지 붙으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이 같은 조건을 모두 갖춘 후보를 전국 250개 선거구 중 한나라당에 가장 유리하다는 서초갑에 전략공천해야 당의 강력한 개혁 의지를 보여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서 백방으로 찾다 나에게 연락이 왔다. 공천 신청은 비례대표로 했지만 전략공천이란 명분으로 서초갑 지역구에 공천받아서 출마했고 당선돼 17대 국회의원으로 정치를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겼다. 여기서는 간단히 서술했지만 공천이 결정되기까지 책을 한 권 써도 될 만큼 매일매일 반전이 거듭됐다. 하지만 매순간 “하나님, 제가 계획하지도 않았고 생각해본 적도 없는 정치의 길로 강권적으로 내모시는 것을 보면 하나님 뜻인 것 같습니다. 제가 혹시라도 하나님의 뜻을 잘못 분별했다면 지금이라도 막아주세요”라고 기도하면서 담담하고 평온하게 임했다. 말 그대로 내 발의 등불만 보며 한 발짝 한 발짝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갔다.

정리=송세영 기자 sysoh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