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형 칼럼] ‘하나님의 프로세스’와 아버지 마음

입력 2013-09-23 17:22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을 불과 나흘 앞두고 행사를 연기한다고 일방적으로 밝혔다. 북한은 민족의 가슴에 못을 박았다. 상봉 연기 소식 이후 넋 놓은 이산가족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이 소개되고 있다. 생의 마지막 자락에서 가족을 만나려 했던 92세 할아버지의 처연한 모습도 보였다. 이산가족 상봉 남쪽 참가자로 확정된 91세의 김영준옹은 지난 19일 심장마비로 숨졌다. 잃었던 자녀를 만나려는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을까.

앞으로도 남북관계에서는 여러 가지 해프닝이 일어날 것이다. ‘역사의 우연성’은 소소한 해프닝을 통해서도 거대한 격변을 가져오게 한다. 한반도 통일의 시간은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빨리 다가올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과 같은 예측 불가능한 상대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박근혜정권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제대로 작동될 수 있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역설적으로 ‘아버지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자녀들을 보겠다는 일념뿐인 구순의 ‘아버지’들과 같은 마음 말이다. 북한에 대해 아버지 마음을 품는 것이 과연 어떤 방법론으로 나와야 하는지는 고민해야겠지만 큰 그림으로 그 마음을 가질 때 남과 북은 여러 해프닝을 뛰어넘어 점차 신뢰의 길로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 마음은 낮아지고 깨어지는 마음이다. 자녀의 성장과 성공에 대해 절대로 질투하지 않는 마음이다. 그 마음은 모든 것을 포용한다. 자녀가 어떤 불장난을 치더라도 안아주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 물론 아버지는 자녀에게 따끔한 가르침을 주기도 한다. 자신이 아니라 자녀를 위해서다. 북한에 대해 아버지 마음을 품고 있다 하더라도 지금은 따끔한 가르침을 줘야 할 때일 수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문제다.

남한은 이제 북한에 대해 아버지 마음을 품을 수 있는 여건이 됐다. 경쟁의 게임은 끝났다. 우열은 정해졌다. 더 이상 경쟁의 구도가 아니라 ‘낮아지고 깨어지는 마음’으로 북한을 포용할 때 남과 북 간에 하나됨의 길은 성큼 다가올 것이다.

이 시점에서 교회는 한반도를 향한 또 다른 ‘아버지의 마음’을 살펴야 한다. 하늘 아버지는 지금 남과 북의 형제들을 바라보고 어떤 마음을 지니고 계실까. 한반도 문제에 관한 교회의 접근은 정부의 접근과는 다를 수 있다. 교회는 남북한 문제에서도 하늘 아버지 마음을 먼저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가장 기뻐하는 순간은 자녀들이 능력 있는 사람으로 자랄 때가 아니다. 자녀들이 서로 화해하며 우애롭게 지낼 때다. 탕자의 비유에서 큰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마음은 큰아들의 생각과는 달랐다. 큰아들은 동생이 집 나간 다음에 최선을 다해 집안일을 챙겼다. 그것은 큰아들의 의였다. 그러나 아버지는 큰아들이 모든 일 제쳐놓고, 심지어는 집안 꼴이 말이 아니더라도 미친 듯 집나간 동생, 망나니 같은 ‘그 녀석’을 찾으러 다니기를 바랐다. 자녀의 화해와 우애, 그것이 아버지의 본심이었다.

남북 간의 여러 해프닝을 뛰어넘어 우리가 믿음을 갖고 보아야 할 것은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보다도 더 강력한 ‘하나님의 프로세스’가 지금 한반도에서 작동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역사의 주’이신 하나님이 지금 움직이고 계신다! 그것을 감지하며 우리에게 전하는 해외 지도자들도 적지 않다. 이러할 때 아버지의 마음으로 한반도를 부둥켜안고 “이 땅에 주 뜻 이뤄 달라”고 기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국민일보 기독교연구소 소장 t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