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객 몰린 주말 대낮… 테러범 수류탄 던지며 총격
입력 2013-09-22 17:50 수정 2013-09-23 00:52
케냐 나이로비 대형쇼핑몰 무장 인질극
소말리아 이슬람 반군이 케냐 수도의 대형 쇼핑몰에 난입해 총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터뜨렸다. 최소 59명이 숨지고 200여명이 다쳤다. 한국인 여성 1명도 총에 맞아 숨졌다.
반군은 테러 공격 하루 뒤인 22일 오후 6시(현지시간)까지 시민들을 인질로 잡고 케냐 군경과 총격전을 벌였다. 케냐에서는 1998년 알카에다가 나이로비 주재 미국 대사관을 폭파해 213명이 사망한 이래 최악의 테러 사건이다.
테러는 21일 낮 12시쯤 두 차례의 폭발음과 함께 시작됐다고 현장에서 탈출한 아프리카연합 직원 프레드 엔고가 가테레트세가 뉴욕타임스에 설명했다. 당시 가테레트세는 나이로비 웨스트랜드에서 고급 쇼핑몰로 꼽히는 웨스트게이트몰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주말을 맞아 놀러 나온 시민과 관광객들로 붐비던 때였다. 가테레트세는 갑작스런 총성에 바닥에 엎드렸다. 눈앞에 나타난 무장 괴한 10여명은 스카프로 얼굴을 칭칭 감고 있었다. 그들은 혼란에 빠진 시민과 직원, 위층 발코니에서 총을 꺼내든 경찰관들을 가리지 않고 쐈다. 가테레트세는 “사격 실력이 뛰어나 누가 봐도 훈련받았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괴한들은 두 패로 움직이며 AK-47 소총과 G-3 저격용 소총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던졌다. 한 목격자는 괴한들이 아랍어나 소말리아어로 보이는 외국어를 쓰면서 시민들을 처형하듯 사살했다고 말했다.
시민들은 필사적으로 도망쳤다. 통풍구로 뛰어오르거나 마네킹 뒤에 숨어 두려움에 떨었다. 경찰은 괴한들을 찾아다니며 총격전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괴한 1명과 경찰 2명이 숨지고 인질 5명이 구출됐다. 시민을 인질로 삼은 괴한 10여명은 1층 슈퍼마켓 안에서 다음날까지 경찰과 대치했다. 인질 수는 AFP통신이 최소 7명, CNN이 최소 36명이라고 보도하는 등 엇갈렸다.
이날 사망자에는 어린아이와 외국인이 다수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아프리카의 저명 시인이자 전직 외교관인 코피 아우노르(78)도 숨졌다고 가나 정부가 확인했다. 아우노르는 나이로비 국립 박물관에서 열리는 문학축제 ‘스토리모야 헤이 페스티벌’에 참석하려고 케냐에 왔다가 변을 당했다. 프랑스, 캐나다 정부는 각각 자국민 2명이 숨졌다고 밝혔다.
한국인 중에는 강문희(38·여)씨가 숨졌다. 영국인 남편과 이곳에 들른 강씨는 괴한들의 총탄과 수류탄 파편에 중상을 입은 채 억류돼 있다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박사과정을 준비하던 중 컨설팅업체에 근무하는 남편을 따라 지난 5월 나이로비로 건너왔다. 강씨 외에 한국인 여대생 이모양도 테러 직후 연락이 두절됐지만 이날 저녁 무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나이로비 외국인학교에 다니는 한국인 소녀 L양(16)은 2층 영화관 영사실에 4시간 동안 숨어 있다 탈출했다. L양은 영사실에서 빛이 새나가지 못하게 모든 창문을 밀봉했으며, 어머니가 밖에서 문자메시지로 전해주는 상황을 접했다. 그는 “숨어 있던 4시간이 현실 같지 않아 아무 감정이 일지 않았지만 엄마가 전화를 걸어왔을 때 눈물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웨스트랜드 지역에는 우리 교민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 한국인 추가 피해에 대한 우려가 높다. 외교부는 이날 케냐에 대해 1주일간 특별여행주의보를 발령한다고 밝혔다.
우후루 케냐타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에서 “저도 이번 테러로 조카를 잃었다”며 “과거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을 물리쳤고 또 그들을 패배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알카에다와 연계된 소말리아 이슬람 무장단체 알샤바브는 트위터에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밝혔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