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구없는 세계의 청춘들… 김사과 장편 ‘천국에서’
입력 2013-09-22 17:35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세계를 시차 없이 하나로 묶어버린 우리 시대에 세계의 중심은 어디인가.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 영국 런던으로 상징되는 서구의 오늘과 서울, 광주, 인천으로 상징되는 한국의 오늘은 그 차이를 물을 수 없을 만큼 닮은꼴이 되고 있다. 여기엔 거대자본이 만들어낸 동일한 소비 패턴과 소비 취향이 개입돼 있다.
소설가 김사과(29·사진)의 신작 장편 ‘천국에서’(창비)는 우리가 처한 이 출구 없는 닮은꼴의 세계를 조망하면서 그 균열을 가로지른다. 첫 장면은 뉴욕. 주인공 ‘케이’는 뉴욕에서 매력적인 여자 써머와 그녀의 남자친구 댄과 어울리며 공연과 파티로 이어지는 뉴욕의 세련된 문화를 경험한다. 하지만 정작 작가의 관심은 근사함과 세련을 한 꺼풀 벗겨낸 그 문화의 본질 자체에 맞춰져 있다.
“그 여름 케이가 뉴욕에서 경험한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경제적 자유주의의 확산과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서양과 일부 아시아 국가의 중산층 젊은이들 사이에 퍼져나간 삶의 한 양식으로, 전후 부흥기가 남긴 마지막 한 조각 케이크였다.”(90쪽)
바로 이 부분. 작가는 이야기 틈새로 스며들어 우리 시대의 저변에 깔린 문화적 현상에 관해 논평한다. 이런 논평은 뉴욕에서 서울로 돌아온 케이의 일상을 따라가면서 더 구체화된다. 서울, 광주, 인천 등으로 이어지는 여정에서 케이가 만나고 헤어지는 인물들은 케이 자신이 그러하듯 안락한 소시민의 세계에서 탈락할까봐 전전긍긍하는 우리 시대 중산층의 자식들이다. 잠실 출신의 부유한 여대생, 운동권 출신으로 독일에서 반문화운동을 경험하고 돌아와 광주에서 통닭집을 운영하는 중년 남자, 고교를 졸업하고 인천의 공단에서 일하는 초등학교 동창 등등.
그들이 세계를 보는 눈은 케이의 시선과 일치하기도, 때로는 어긋나기도 한다. “모든 것을 타인의 눈을 통해 선택하는 사람들의 세계. 유행하는 노래를 듣고, 유행하는 텔레비전 쇼를 보고, 유행하는 정치적 입장을 지지하는 멍청이들. 그들은 바로 자신들의 부모였고 형제이자 이웃이었으며, 결국 자신들이었다.”(143쪽)
세계의 내부와 외부 사이에 엄연히 존재하는 균열과 모순. 김사과는 우리 시대 젊은이들의 고뇌와 직설적이고도 섬세한 논평을 통해 불안과 환멸의 바탕에 놓인 세계의 몰락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