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수, 히트작 ‘무정’ 인세 한푼 못받았다는데

입력 2013-09-22 17:35


책의 탄생과 이야기의 운명/박진영/소명출판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종합출판사는 육당 최남선(1890∼1957)이 세운 신문관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창립 시기에 대해서는 1906년 가을부터 1908년 여름까지 여러 가설이 상존한다. 훗날 회고와 증언이 서로 엇갈린 탓이다. 하지만 정작 논란의 빌미를 제공한 것은 최남선 자신이었다. 그는 신문관이 창립된 해를 열일곱 살 때라고 회고한 바 있기 때문이다. 이에 근거한다면 창립 시기는 1906년이다.

하지만 장남 최한응에 따르면 최남선은 1906년 겨울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1907년 여름 신문관을 열었다. 이런 가설에 덧붙여 최남선은 1907년 일본 유학생 단체 기관지 편집인을 맡고 있었기에 그 이듬해인 1908년 6월쯤 신문관이 창립됐다는 또 다른 주장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근대 출판문화사엔 이런 가설과 오류가 수없이 누적돼 있다. 초창기 출판사와 서점, 편집자와 출판인, 저작권과 판권 등을 둘러싼 오류를 바로잡는 일은 실증적 증거를 제시해야 하기에 지난한 작업이다. 한편으론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는 추리 소설처럼 흥미진진한 게 사실이다.

판권에 적힌 출판사 주소도 일제 당시의 빈번한 지번 변동으로 인해 바뀔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초기 출판사의 정확한 위치를 확정하는 데 또 다른 장애가 되기도 한다. 이런 장애를 하나하나 뛰어넘으면서 이광수의 ‘무정’, 이해조의 신소설, 이수일과 심순애 이야기 등을 통해 초창기 출판계의 실상을 추적하는 저자의 유연한 운필법 또한 흥미롭다.

소설 ‘무정’을 내고도 정작 이광수 자신은 한 푼의 인세조차 받지 못한 경위에 이르러서는 판권을 둘러싼 초창기 출판계의 알력과 갈등이 읽혀지기도 한다. 1920∼1930년대 출판문화를 선도한 명문출판사 사옥과 로고 등 귀중한 자료를 찾아내 권두 화보로 실은 것은 물론 각 부 끝자락에 실린 ‘갈피짬’은 지난 시대 저명 편집자와 출판인의 일대기를 복원한 약전에 해당한다. 저자는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