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모자 장수는 수은중독자?

입력 2013-09-22 17:35


세계 문학 속 지구 환경 이야기/이시 히로유키/사이언스북스

‘오만과 편견’으로 유명한 영국 작가 제인 오스틴의 소설 ‘에마’엔 ‘하지 무렵에 핀 사과꽃’ 이야기가 등장한다. 하지만 영국에서 사과꽃은 5월에 피는 꽃. 오스틴 사후 영국 기상학자와 전문가들 사이에선 논쟁이 벌어졌고, 과학잡지 ‘네이처’에서도 다룰 정도로 관심이 뜨거웠다. 어떤 이들은 당시 오스틴이 자주 앓아서 계절을 혼동한 것이라는 해석도 내놨다.

일본 아사히신문의 환경생태 전문기자였던 저자는 “오스틴이 틀리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당시 기후, 사과 품종의 개화 기록 등 다양한 자료를 분석해 오스틴이 작품을 집필한 1815년 즈음 전 세계가 대규모 화산 분화로 한랭화의 몸살을 앓았음을 찾아낸 것이다. 이런 이상 기온 현상 때문에 사과꽃이 여느 해보다 늦게 피었다는 얘기다.

저자는 이렇게 세계적으로 유명한 문학작품 24권에서 다양한 환경 문제를 읽어낸다.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에는 파리의 하수도를 이렇게 묘사한 대목이 나온다. “뚜껑 벗긴 파리를 상상해보기 바란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하수도들의 지하 망상체가 센느강 양안에 걸쳐 그 강에 접목시키듯 붙여 놓은 일종의 거대한 나뭇가지를 그리고 있을 것이다.”

실제로 콜레라 등 전염병이 창궐했던 파리는 하수도 문제에 골머리를 앓고 있었고 위고 역시 폐수 처리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결국 파리엔 이처럼 거대한 하수도가 설치됐고, 완공 직후엔 배를 띄워 하수도를 유람하는 게 유행이었다고 한다. 소설에서 주인공 장발장이 마리우스를 업고 하수관을 통해 탈출하는 장면이 가능했던 이유인 셈이다.

영국 동화작가 루이스 캐럴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통해 수은 중독을 이야기하는 대목도 흥미롭다. 이 책에 등장하는 모자 장수는 별난 행동으로 ‘매드 해터(Mad Hatter)’로 불리며 독특한 캐릭터로 자리매김했다. 저자는 19세기 유럽에서 모자 쓰는 문화가 정착되면서 모자 장인 중 환각이나 망상 등의 증세를 보이는 수은 중독 환자가 많이 나왔다고 설명한다. 당시 모자의 주원료인 펠트 생산 과정에서 질산수은이 사용됐고, 그때 발생한 수은 증기를 들이마신 장인들이 수은에 중독됐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밖에도 허먼 멜빌의 ‘모비딕’과 조지프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을 통해 각각 고래와 코끼리의 멸종 위기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일본 소설가 시바 료타로의 ‘가도(街道)를 간다’ 등을 통해 제철이 망쳐버린 숲 등 일본의 환경문제도 언급한다.

문학을 통한 환경사 연구에 저자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유럽 국경지대의 대기오염 역사를 조사하기 위해 스웨덴을 찾았다가 노르웨이 극작가 헨리크 입센의 극시 ‘브란트’ 속에 영국에서 북유럽까지 날아온 스모그를 묘사한 대목이 있다고 소개받으면서다. 저자는 이후 문학 작품 속 환경 문제에 주목하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예민한 문학가들이 마치 ‘탄광의 카나리아’ 같다는 확신을 굳히게 됐다”고 한다.

책 자체도 흥미롭지만 읽다보면 그가 소개하는 문학 작품을 찾아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묘한 매력이 있다. 환경생태 전문기자를 거쳐 국제 환경단체에서 일하고 대학 강단에 서며 아프리카 주재 대사로 지내는 등 다양한 경험으로 무장한 저자는 풍부하면서도 쉬운 글로 독자를 유혹한다.

두 권으로 된 이 책의 토대는 일본 ‘닛케이 에콜로지’에 2008년 7월부터 3년간 연재했던 것인데, 당시 ‘문학에 관심 없는 학생들에게 환경을 통해 문학에 들어가는 입구를 만들어줬다’는 독자 편지를 받았다고 한다. 잘 읽히는 쉬운 글에 한국 출판사가 넣은 일러스트레이션과 상세한 주석 덕분에 청소년 독자들도 편하게 도전해볼 만한 책이 됐다. 안은별 옮김.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