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이산가족 상봉 연기 파장] “동생 만난다는 기쁨에, 중풍에도 걷기 연습 했는데…”
입력 2013-09-22 17:28
날벼락 맞은 이산가족들 표정
평생 그리운 가족을 지척에 두고도 못 보는 이산가족들은 또 다시 눈물만 삼켜야 했다. 이산가족 상봉을 사흘 앞두고 연기됐다는 소식을 들은 홍신자(83) 할머니는 여동생 영자(82)씨 생각이 더 간절해졌다. 17세 때 서울 후암동 큰언니 집에 다녀올 생각으로 떠난 것이 함경북도 회령에 있는 동생과 마지막이 됐다. 남편 이용순(86) 할아버지는 눈물을 흘리는 아내에게 말없이 네모 반듯하게 휴지를 접어 건넸다.
홍 할머니는 최근 이산가족 생사확인 통지문을 통해 동생이 살아 있다는 소식을 접한 뒤 걷기 연습을 시작했다. 중풍을 앓아 오른쪽 전신이 마비된 데다 3년 전 고관절 수술까지 받아 늘 집에만 누워 있던 할머니였다. 이 할아버지는 22일 “동생을 만난다니까 힘이 났는지 걷기 연습도 곧잘 했다”며 “늙은 사람에게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계속 우는 아내를 지켜보니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홍 할머니는 “만나면 먼저 부둥켜안고 울 것 같다. 나이가 들고 몸이 아프니 자꾸 동생 기억이 흐려져서 꼭 만나고 싶었는데…”라며 말을 흐렸다. 이어 며칠 전 상봉을 앞두고 사망한 이산가족 할아버지 이야기를 꺼내며 “이제 나도 얼마나 더 기다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흐느꼈다.
박춘재(72) 할아버지는 고향 이야기를 할 때 11세 소년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주소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황해도 평산군 마산면 은촌리의 집 옆에 큰아버지 집도 있었다고 했다. 형제들과 정다운 시절을 보냈던 박 할아버지는 1952년 어머니와 동생 손을 잡고 월남했다. 하지만 어머니, 동생과도 1·4후퇴 때 헤어져 혼자 남쪽에 남겨지게 됐다. 적십자사를 통해 생사 여부를 확인해 보니 98세인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고 남동생마저 세상을 떠났다.
박 할아버지는 이번 이산가족 상봉을 통해 애틋했던 남동생의 자녀들을 만날 계획이었다. 그는 “조카들에게 어머니와 동생 얘기도 듣고, 살던 동네 얘기를 들으며 그리운 고향땅을 머릿속으로나마 그려보고 싶었다”면서 “조카들 주려고 옷, 화장품, 가방 다 마련해 뒀는데 기약 없이 미뤄지니 안타깝다”고 말했다.
허경옥(85) 할머니는 개성에 두고 온 두 여동생 옥진(80), 유갑(74)씨를 만날 계획이었다. 선물로 주려고 치약부터 각종 생필품과 옷가지를 마련했다. 상봉이 연기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억장이 무너지는 듯했다. 가족들에게 늘 북한에 두고 온 동생 이야기를 해왔던 터라 허 할머니 가족에게도 이번 상봉은 꿈같은 일이었다. 며느리 김봉기(61)씨는 “나머지 가족들이 어머니의 고향 이야기를 다 외우고 있을 정도”라며 “희망을 버리지 않고 기다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