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이웃의 아픔 전하는 일, 나눔의 기쁨 함께 누리자는 거예요”

입력 2013-09-22 17:06 수정 2013-09-22 11:23


월드비전 일반인 홍보대사 비전메이커, 경기 남지부 ‘화이트페이퍼’ 만나보니…

월드비전에는 전국 18개 지부에 1000여명의 일반인 홍보대사가 있다. 이들은 ‘비전메이커’라는 이름으로 주변에 나눔의 기쁨과 지구촌의 아픔을 전한다. 이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활동을 한 경기도 남지부의 비전메이커 ‘화이트페이퍼’ 그룹을 지난 13일 성남 금광동 월드비전 성남종합사회복지관에서 만났다.

“샤워할 때마다 아프리카 아이들이 생각나요. 물도 아껴 써야겠어요.”

“나도 소망이 생겼어. 외국어 공부 열심히 해서 외국 어린이를 돕는 일을 하고 싶어.”

모여 앉자마자 짬뽕 짜장면 탕수육을 시켜놓고 단무지를 씹으며 이야기꽃을 활짝 피운다. 최우수 비전메이커로 뽑혀 지난달 아프리카 말라위를 다녀온 이야기가 화제다. 가장 연장자인 최평호(35)씨는 말라위를 가기 위해 직장까지 그만뒀다. 그는 새벽 4시30분이면 일어나 김밥 한 줄 먹고 출근해 밤늦게까지 일하면서도 외국 어린이를 돕는 후원을 빠트리지 않는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다.

아르바이트 때문에 말라위에 가지 못했던 허진주(23)씨는 아쉬워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다녀와서 이야기하는 것만 들어도 보람이 느껴진다”고 했다. 영상촬영이 전공인 그는 고교시절까지 월드비전에서 도움을 받았다. 지금은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아끼고 아껴 후원을 하고 있다. “도움을 받을 때 늘 나도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후원 받는 아이의 편지를 받고 나도 편지를 쓰면서, 후원하는 사람의 마음이 이런 것이구나 경험하는 게 재미있어요.”

12명의 비전메이커들은 월드비전 직원보다 더 열정적으로 모금활동을 벌였다. 월드비전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라디오방송과 TV예능 프로그램에도 단체로 출연했다. 컬투가 진행하는 라디오 ‘컬투쇼’, KBS TV의 ‘안녕하세요’에 방청객으로 앉았다. “연예인 홍보대사가 따로 있나. TV에 나오고 라디오에 나오면 우리도 홍보대사지!” 제작진도 비전메이커들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격려했다. 성남 지역 라디오에 출연했을 땐 아예 DJ까지 맡아 비전메이커 이야기로 1시간 동안 방송을 진행했다.

야구장과 축구장도 찾았다. 축구장 앞에서 사랑의빵 저금통을 나눠주기도 했고, “홈런 팍팍! 후원 팍팍!” 이런 문구를 만들어서 중계 카메라에 가장 잘 비치는 곳에 앉았다.

“그런데 비가 오는 바람에 1회만 하고 경기가 취소돼 버렸어요. 흑흑.”

“그런데 평호 오빠는 치어리더만 쳐다본 거 있죠.”

어느새 서로가 남매처럼 가족처럼 가까워졌다. 함께 캄보디아에 우물을 팔 돈을 모으기 위해 거리에서 모과차를 팔기도 하고, 모금통을 들고 학교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교회에서 동전모으기 행사도 벌였고, 모금을 호소하는 포스터를 만들어 카카오톡과 페이스북에 올렸다. 그래도 부끄럽지 않은 것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외계인도 무서워한다는 ‘중2’ 강찬(15)군은 비전메이커 활동을 하며 훨씬 밝아졌다. 말라위에서 자기 또래의 친구를 만난 일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아프리카를 떠나오는 마지막 날 찬이는 이렇게 말했다.

“자꾸 미안한 마음이 드는데, 왜 미안한지 모르겠어요.”

지구촌 이웃을 위해 시작한 비전메이커 활동이 자신들을 더욱 성숙하게 만들었다. 손제덕 간사는 “의무감이 아니라 열정으로 이 모든 일을 신나게 해냈다”며 “서로 가족처럼 친근해진 것은 좋은데, 부작용도 있다”고 말했다.

부작용? 카카오톡 채팅방이 밤늦게까지 톡톡 울린다. 새벽 2시에도 “좋은 홍보 문구가 생각났어요!” “이런 책도 같이 읽어보면 어떨까요?” 하는 글이 올라온다. 월드비전 사무실이 있는 복지관을 지나가다가 후원개발팀의 방에 불이 켜진 것을 확인하고는 통닭을 사들고 오기도 한다. 야근이 더 길어지고 뱃살은 더 늘어난다.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혼자 있는 걸 더 좋아했던 송재섭(30)씨는 “여기 오면 나 혼자서는 못할 일을 같이 해낼 수 있다”며 “오늘도 빨리 오고 싶어서 달려왔다”고 말했다.

“직장을 다니거나 학교를 다니면서 비전메이커 활동을 하는 게 힘들 줄 알았는데, 오히려 여기 오면 마음이 편해지고 더 힘이 나요. 비전메이커는 제게 피로회복제 같아요.”

대화는 또 아프리카 이야기로 이어졌다. 김아리(23)씨는 아프리카에 가서 살고 싶다고 했다.

“말라위에서 날 처음 보는 아이들이 웃어주고 반겨주던 장면이 계속 생각나요. 거길 다녀온 뒤 나도 이제 낯선 사람들에게도 웃어줄 수 있게 되었어요. 꿈도 생겼어요. 앞으로 한 마을을 몽땅 다 돕고 싶어요. 거기 가서 같이 살고 싶어요.”

강인후씨는 아리씨와는 반대로 “아이들을 데려와 키우고 싶다”고 했다. 막내 찬이가 가장 의젓하게 말했다.

“학교 갈 때 늘 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요즘엔 걸어다닐 때가 많아요. 아프리카 아이들이 물 한통 떠오려고 몇 시간씩 걸어다니던 일이 생각나요.”

고3 수험생인데도 비전메이커 활동을 하고 대학에 당당히 합격한 백예림(20)양은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돕기 위해 도시계획을 전공으로 선택했다. 말라위에 다녀온 뒤 조금 더 큰 꿈이 생겼다. “돈을 많이 벌고 싶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을 잘 도와주고 싶어요.” 화이트페이퍼 멤버들은 예림씨의 교실을 깜짝 방문해 급우들에게 간식을 나눠주고 응원하기도 했다.

평호씨도 좀 더 자신감이 생겼다.

“우리가 매달 보내는 후원금 3만원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현장에서 확인하고 나니까, 이젠 낯선 사람에게도 자신있게 설명하면서 후원해 달라고 얘기할 수 있더라고.”

손 간사는 이날 모임에 오지 못한 멤버들의 이야기도 들려줬다. 수도권 지하철 범계역 인근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추현정씨는 가게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은 물론이고 손님들에게까지 후원을 권한다. 비전메이커의 행사가 있을 때마다 빵을 팍팍 보내주는 협찬왕이다. 포토숍의 대가 강현정씨는 상큼 발랄한 센스로 최고의 후원 홍보물을 만들어주는 든든한 실력자였다.

다들 지난 1년간의 비전메이커 활동이 공식적으로는 끝났다는 것을 아쉬워했다.

“우리 앞으로도 계속 만나요.” “학교 갈 때마다 카톡으로 인사할게요. 그래도 되죠.”

밤이 깊도록 이들의 대화는 끝날 줄 몰랐다.

성남=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