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3부) 한국,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는다] (25) 정부·주민 친환경에너지 한마음
입력 2013-09-22 16:56 수정 2013-09-22 14:35
재생에너지 자립마을… 남는 전기 팔아 소득 안정
베를린에서 기차로 한 시간 반 정도 떨어진 브란덴부르크주 펠트하임(Feldheim)은 독일이 지향하는 재생에너지의 미래상을 구현한 복합 재생에너지 자립마을이다. 펠트하임은 ‘블랙아웃’ 걱정도, 자원 고갈의 우려도 전혀 없다. 소규모의 풍력·태양광·바이오가스 발전소에서 나오는 재생에너지는 마을이 필요한 전력과 난방 공급을 훨씬 뛰어넘어 가구당 소득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주는 동력으로 자리잡고 있다.
◇직접 생산한 에너지만 사용=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으로 지난 11일 방문한 펠트하임은 조용하고 한적한 농가 마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마을 진입로는 자동차 한 대가 간신히 지나갈 정도로 좁았고, 건물은 수십년 이상 된 낡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멀리 보이는 풍력발전기 정도가 다른 농촌 마을과 다르게 보일 뿐이다.
보기와 달리 펠트하임은 재생에너지 분야에서는 독일의 평균을 상당히 앞선 마을이다. 모두 43개 설치된 풍력발전기는 총 74.1메가와트(㎿)의 전기를 생산할 수 있다. 풍력발전기는 멀리서 보면 여유롭게 돌아가는 듯했지만 가까이 갈수록 큰 소음이 났다. 문을 열고 풍력발전기 안에 들어가니 옆 사람이 말하는 소리도 제대로 듣지 못할 정도로 시끄러웠다. 이날 펠트하임에 분 바람은 초속 5.5m였다. 풍력발전기 계기판에는 144㎾의 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표시가 떴다.
펠트하임 안내를 담당하는 캐서린 톰슨씨는 “16∼17㎧일 때 발전 효율이 가장 뛰어나고, 26㎧ 이상의 강한 바람이 불면 발전기가 넘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작동을 멈춘다”고 설명했다.
펠트하임에서는 전기발전과 난방 용도로 쓰이는 바이오가스 발전소도 2008년부터 운영 중이다. 바이오가스 원료는 마을에서 키우는 돼지의 배설물과 옥수수, 통밀 등이다. 돼지 배설물은 한 해 2000㎥, 옥수수와 통밀은 각각 6125t, 650t 사용된다. 옥수수와 통밀 사용량은 펠트하임 전체 생산량의 20%에 해당한다. 80%는 지역주민들의 식량이나 가구 수입으로 활용된다. 바이오가스 발전소는 해마다 400만㎾h의 전기를 생산하고 있다.
펠트하임이 주목받는 이유는 재생에너지 발전시설뿐만 아니라 이를 자체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송전시설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풍력발전소에서 마을까지 자체 송전망이 있어서 풍력발전으로 나온 전기는 모두 펠트하임에서 직접 사용된다. 바람이 불지 않을 때는 바이오가스 발전소의 전기를 이용한다.
이곳에는 45만㎡ 부지에 9844개의 태양광 모듈이 설치된 ‘솔라팜(Solar Farm)’도 운영 중이다. 풍력과 바이오가스 전기만으로도 충분하기 때문에 해마다 솔라팜에서 생산되는 2748㎿h의 전기는 외부에 판매하고 있다. 톰슨씨는 “펠트하임에서 사용하는 전기는 전체 발전량의 1%밖에 안 된다. 99%는 외부로 판매된다”고 강조했다.
펠트하임은 내년에 재생에너지에서 만든 전기를 축전할 수 있는 배터리도 설치할 계획이다. 배터리를 설치하면 바람이 불지 않는 등 재생에너지 사용이 힘든 상황에도 4∼5일간 사용할 수 있는 전기를 저장할 수 있다.
◇재생에너지로 마을 전체 활력=재생에너지 시설이 하나 둘 들어서면서 펠트하임은 에너지 자립뿐만 아니라 경제적 효과까지 거두고 있다. 펠트하임에는 모두 37가구, 128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그중 30명은 1959년 설립된 자체 노동조합에 가입돼 있다. 주민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한다. 오랫동안 돼지를 키우고 사탕수수, 감자를 주로 재배했다. 하지만 2004년 유가가 폭등하면서 마을 전체에 위기가 왔다. 재배하던 감자와 사탕수수 가격은 폭락한 반면 난방비는 크게 뛰어 돼지 사육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때 바이오가스 시설을 설치하고 재배 작물을 옥수수, 통밀 등으로 바꾸면서 경쟁력이 올라갔다.
마을에 설치된 풍력발전기는 에너지크벨레(Energiequelle)라는 회사 소유다. 펠트하임 주민들은 에너지크벨레에서 땅 임대료를 받고 있다. 에너지크벨레는 풍력발전기에서 생산된 전기를 펠트하임에 공급하고 남는 것은 판매한다. 펠트하임과 에너지크벨레는 10년짜리 임대계약을 체결했다. 현재 3년이 지났고 앞으로 7년간 펠트하임 주민들은 고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다. 에너지크벨레 홍보 담당자 베르너 프로비터씨는 “10년 후에는 액수를 다시 조정할 수 있겠지만 서로 윈-윈하는 수준의 관계가 계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민 중 일부는 에너지크벨레가 펠트하임 내에 설립한 EQ-시스(SYS)라는 태양광 설비 업체에서 일한다. 태양광 모듈을 받치는 지지대를 만드는 업체로 만든 제품은 독일, 중국 업체 등에 수출되고 있다.
톰슨씨는 “펠트하임은 깨끗한 재생에너지로 에너지 자립을 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재생에너지로 마을 주민들의 수익 증대와 고용 창출까지 이뤄냈다는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펠트하임 밖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는 “독일 통일 이후 이 지역에 있던 3곳의 큰 공장이 문을 닫는 등 지역경제 전체가 어려운 상황이었다”면서 “펠트하임이 재생에너지 마을로 변신한 뒤 관광객도 늘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마을 주민과 주정부, 에너지 회사들이 공동 이익을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댄 결과였다.
브란덴부르크=김준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