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北, 이산가족 상봉 연기로 얻을 것 없다
입력 2013-09-22 19:17
해빙 조짐을 보이던 남북관계가 다시 얼어붙고 있다. 남북이 어렵사리 오는 25일부터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갖기로 합의한 뒤 상봉 대상자 명단까지 교환했으나 북한이 돌연 행사를 무기 연기한 탓이다. 금강산 관광 실무회담 일정도 미뤄졌다. 북한의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는 21일 대변인 성명을 통해 정치적 이유를 들어 이산가족 상봉 연기를 발표한 데 이어 22일엔 서기국 보도를 통해 “(이산가족 상봉 연기의 책임은) 전적으로 남조선 보수패당에 있다”고 했다. 북한은 예전에도 남측의 대북정책 전환을 노리며 인도적 사안인 이산가족 상봉을 일방적으로 무산시키며 책임을 남측에 전가한 적이 수차례 있다. 못된 버릇이 도진 것이다. 이번에도 오매불망 혈육과의 재회를 기다리던 190여 이산가족들에게 엄청난 절망감을 안겨주었으니 참으로 무도(無道)한 집단이다.
북한의 속내는 명확하지 않다. 겉으로는 ‘남조선 보수패당의 무분별하고 악랄한 대결소동’을 꼽았지만 이는 궤변이다. 따라서 다른 의도가 있을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예를 들어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실무회담이 지지부진하자 남측을 압박하려는 의도일 수도 있고, 북핵 6자회담 또는 북·미 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위한 남측의 입장 변화를 요구하려는 속셈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어느 것이든 합의 파기라는 돌발행동으로 북한이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 연기 이유 가운데 하나로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을 거론한 점은 주목된다. 조평통은 “(남측이) 모든 진보민주인사들을 용공·종북으로 몰아 탄압하는 일대 마녀사냥극을 미친 듯이 벌이고 있다”면서 “통일애국인사들에 대한 탄압 소동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석기 파문’이 한창이던 이달 초 이 의원의 실명을 거론하지 않은 채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통신 등의 매체를 동원해 “동족대결을 고취하는 파쇼 광란”이라고 비난한 데서 한 발 더 나아간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남남갈등을 조장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마녀사냥이라면서 남측의 진보·민주세력들에게 궐기하라고 촉구하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통합진보당 논리와도 유사하다. 특히 ‘애국인사’라고 언급한 대목을 간과해선 안 된다. 이 의원 등을 북측에서 조종해 왔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과 검찰은 이 의원 및 소위 RO 조직원들과 북한의 연계성을 규명해야 한다.
단언컨대 이산가족 상봉 연기는 북한에 결코 득이 안 된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는 물론 국제사회에도 걸핏하면 뒤통수를 치는 비열한 국가라는 이미지만 덧씌워지고 있지 않은가. 북한은 대결책동을 집어치우고 이산가족 상봉 행사에 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