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방우체국-루마니아 정홍기 선교사] 나의 선교사역, 패러다임 변화

입력 2013-09-22 17:02


정치권에 한명의 ‘세례 요한’ 보내기 위한 기도가 이뤄져…

2003년 여름, 가끔 우리 교회(루마니아 시온장로교회)에 출석해 예배를 드리던 정치인 오비디우 박사(루마니아 기독민주당 소속)가 나를 기독민주당 모임에 초대했다. 그 곳에서 나는 정치인들과 처음으로 안면을 트고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그리고 얼마 뒤 한 네덜란드인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루마니아 고아원 구제 사역을 하면서 알게 된 친구였는데, 루마니아어로 펴낸 ‘칼빈주의 기독교강요 출간 기념 세미나’를 함께 열자는 요청이었다. 그는 개신교 정당과 함께 이 세미나를 주최하기를 바라고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일전에 소개받은 기독교민주당 측에 부탁해 함께 행사를 치를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태동한 것이 2004년 첫 발을 내디딘 ‘기독교와 사회’ 세미나다. 네덜란드의 ‘개혁정당’과 루마니아 기독민주당, 루마니아 장로교협의회가 함께 참여하는 행사다. 올해까지 10년째 이어져오고 있는 이 사역은 나의 루마니아 선교 사역 패러다임을 바꾼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

공산주의가 붕괴된 직후 루마니아에는 침례교와 오순절 등 개신교 활동이 활발했다. 유럽과 미국, 그리고 한국 선교사들에 의해 다양한 방식의 선교활동이 이어졌다. 하지만 지금은 가톨릭과 정교회가 서로 경쟁하면서 정치계와 경제계, 문화계 등 거의 모든 사회 분야의 선교를 선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교회에 전통적인 뿌리를 둔 루마니아의 독특한 문화적 특성이 가톨릭과 정교회 쪽에 가까워진 것으로 선교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기독교와 사회’ 세미나는 나에게 커다란 도전을 주기에 충분했다.

개신교인들은 가톨릭이나 정교회 신도들과 삶에 대한 자세가 다르다. 개신교인은 삶의 목표에 대해 분명한 인식을 갖고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회적 책임에 대한 ‘부르심’으로 나타나는데, 세미나는 이에 대한 동기를 부여했다.

‘제1회 기독교와 사회 세미나’의 주제는 ‘칼빈주의’였다. 네덜란드 개혁정당 소속의 유럽연합(EU) 국회의원과 몇몇 목사들이 강의했다. 당시 그들은 “루마니아가 EU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정치적, 종교적 준비를 갖춰야 한다”면서 “특히 기독교 가치관이 확립된 지도자를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당시 그 강연내용은 내 마음을 쿵쿵 뛰게 만들었다. 이곳 루마니아에서 펼치는 사역의 새로운 지평이 열릴 것 같은 기대감 같은 것이었다.

첫 번째 세미나는 참석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그리고 전국적인 기독교 정치지도자 개발운동으로 발전하는 토대가 됐다. 동시에 루마니아 ‘기독교연합정당’이 태동하는 기반을 제공했다. 나에게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정치인, 대학 교수 등 사회지도층을 대상으로 한 선교 비전을 심어주었다.

2006년, 미국 검찰총장 출신인 존 아쉬크로프 장로를 만나면서 기독교 지도자의 양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비로소 깨닫게 됐다. 아쉬크로프 장로는 미국 미주리 주지사(1985∼1993)를 거쳐 미국 검찰총장(2001∼2005)을 역임했다. 오순절 계통의 헌신적 크리스천인 그는 검찰총장 재직시 총장실에서 매주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등 법률인으로서 예수님의 가르침을 삶 속에서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어느 날인가 아쉬크로프 장로가 나에게 건넸던 말이 기억난다.

“어느 사회든 부패는 존재합니다. 그러나 그 부패를 척결하기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특히 걸음마 민주주의 단계인 루마니아 같은 나라에서 부패를 막는 것은 기독교인들의 사명입니다.”

그는 건강한 기독교 가정 리더십을 세우는 일과 헌신적인 기독교 지도자들이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같은 내용을 ‘기독교와 사회’ 세미나에서 언급했고, 그의 강연으로 세미나는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됐다. 하나님의 은혜였다.

‘기독교와 사회’ 세미나에는 지난 10년 동안 정치인과 경제인, 대학교수와 목사 등 1000여명의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참석했다. ‘칼빈주의의 하나님 주권 사상’ ‘미디어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 ‘가정 리더십의 중요성’ ‘현대 유럽연합에서 기독교인의 역할’ 등을 다뤘다. 그리고 이같은 활동은 지난해 8월 복음주의 지도자들을 주축으로 ‘기독교연합민주당’을 탄생시키는 밑거름이 됐다.

‘기독교와 사회’ 세미나에서는 정치가 선교의 방편으로 이뤄질 수 있는 방안과, 복음이 엘리트 계층에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다양한 논의가 이어져왔다. 아울러 유럽 주요 국가들의 국회기도회 등과 연대해서 선교적 사역을 담당하는 정치인의 배출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 결과 함께 사역하던 루마니아 출신의 베노니 아르델레안 목사가 이번에 루마니아 국회 상원에 진출해 활동하게 됐고, 나는 그의 자문역을 맡게 됐다.

루마니아 상원 의원 중 유일한 복음주의권 크리스천인 아르델레안 의원은 루마니아 기독교사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지난해 루마니아 상원 의원선거에서 당선된 그는 이미 2009년 유럽연합 의회의원 선거에서 안타깝게 낙선한바 있다.

기독교적 정치 리더십을 구현하는 유일한 후보로 꼽히는 아르델레안 의원이 국회에 입성한 건 루마니아 기독교계의 쾌거였다. 점점 세속적이고 다종교화 되어가는 유럽의 현실 속에서 한 명의 ‘세례 요한’을 보내고자 했던 우리의 기도가 드디어 이뤄진 것이다. 아르델레안 의원은 상원의 가장 중요한 위원회 중 하나인 정치·외교위원회 간사로 선정됐다. 복음적인 정치 지도력을 확대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다.

나는 정치에 편견을 갖고 있다가 뒤늦게 이 분야에 발을 들여놓았다. 아르델레안 의원과 활동하면서 확신이 들었다. ‘성경에 기초한 정치를 펼칠 수 있겠다.’

무엇보다 나를 비롯해 세미나에 참석한 많은 리더들은 이 곳 루마니아 땅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과 함께 이 백성을 위해 일할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비전을 갖게 됐다. 오직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길만이 이 나라의 무너진 도덕성을 회복하는 해법이라는 확신도 갖게 됐다.

그래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확고한 믿음이 생겼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부르심에 합당한 것 이상을 꿈꾸지 말고 주님의 부르심에 맞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르심은 우리의 올바른 행동의 기초가 되며 삶의 길이 된다. 성경도 말한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씨앗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12:3)

●정홍기 선교사

-1954년 전북 고창 출생

-1985년 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 졸업

-AFC선교회 총무(1986∼1991)

-1992년 AFC선교회 루마니아 선교사로 파송

-루마니아 시온장로교회 목사(1992년∼현재)

-루마니아 전문인 지도자 개발원 대표(2010∼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