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그리스도인, 경계를 넘는 사람들
입력 2013-09-22 17:06
빌립보서 2장 5∼8절
3년째 일본 고쿠라와 나가사키에 평화기행을 다녀오고 있습니다. 기억에 남을 만한 장소와 사람들이 많지만 특별히 나가사키 평화공원 한구석에 있는 작은 추도 비석과 그 비석을 세운 사람들이 기억에 남습니다. 추도 비석에는 ‘추도’라고 쓰인 글자 밑에 ‘나가사키 원폭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라는 비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그리고 ‘원폭으로 죽어간 이름도 없는 조선인을 위하여, 이름도 없는 일본인이 속죄의 마음을 담아’라는 글이 쓰여 있습니다.
추도 비석을 세운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바로 오카 마사하루 목사입니다. 오카 목사는 목회자가 된 후 모든 열정을 쏟아 일본제국주의의 악행을 고발하고 그 악행에 대해 사죄한 사람입니다. 그것 때문에 우익청년들에게 테러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기까지 했습니다. 일본인이었지만 일본 국적을 뛰어넘어 그리스도인으로서 행동했던 사람입니다. 오카 목사의 정신을 기리고자 그가 사망한 후 지인들이 오카 마사하루 기념 나가사키 평화자료관을 만들었고 매년 약 5000명이 이곳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 우편에 계신 분이었지만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경계를 훌쩍 뛰어 넘으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갈릴리에서 3년의 공생활을 하시는 동안 니고데모와 같은 귀족에게뿐 아니라 세리와 창녀들에게도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부자와 가난한 자, 남자와 여자, 주인과 종, 히브리인이나 헬라인의 경계를 넘어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각양각색의 경계선을 허물어뜨리고 오직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모인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야말로 촘촘하게 갈라지고 찢어지고 분열된 인간 세상의 수많은 경계선, 즉 국가와 민족, 계급, 성별, 지역과 세대 등의 경계를 뛰어 넘는 사람들입니다. 요즘, 우리 주변을 둘러싼 환경이 여러 갈등과 분쟁으로 어지럽습니다. 약간 나아지기는 했지만 얼마 전까지 남북관계는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한반도를 휩쓸었습니다. 역사청산과 영토분쟁으로 동북아시아의 긴장도 날로 높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빈부격차와 비정규직 문제, 지역과 세대 간 갈등, 제주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건설과 밀양송전탑 건설 문제, 학교폭력 등 각종 갈등과 분쟁으로 평화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런 때 그리스도인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갈등과 분쟁의 현장에서 화해의 제자로 산다는 것은 바로 사람들이 그어놓은 경계선을 넘어 한쪽의 이념, 논리에 구속당하지 않고 양쪽을 이해하고 연결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그리스도인들은 한쪽 혹은 양쪽 모두로부터 오해도 받을 수 있고 배신자로 몰려 희생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오카 목사는 일본인들로부터 ‘비(非)국민’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갈라지고 깨어진 땅에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바로 세울 때입니다. 인간들이 만들어놓은 딱지와 경계선을 뛰어넘는 사람들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의 경계, 계급과 민족, 남녀와 인종의 경계를 뛰어넘어 정의와 평화의 복음을 전하셨듯이 우리들도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오상열 목사 (기독교평화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