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의사당 코앞서 탕! 탕!… “무방비 도시” 충격
입력 2013-09-17 15:53
16일(현지시간) 미국 수도 워싱턴DC는 하루 종일 긴박하고 혼란스러웠다. 경찰 순찰차와 테러 진압 특수차량들이 백악관 앞 컨스티튜션 애비뉴 등 주요 도로를 경광등을 켠 채 질주했다. 하늘에는 헬리콥터가 낮게 떠 순회했다.
총격 사건이 벌어진 네이비 야드(해군 복합단지) 근처 8개 학교가 휴교했고 연방의회 의사당에는 대피 명령이 내려졌다. 월요일인 이날 출퇴근 시간대 워싱턴DC 동남지역 일대의 교통이 통제되면서 극심한 정체가 빚어졌다.
총격이 시작된 것은 이날 오전 8시15분쯤. 해군복합단지 내 해군체계사령부(NAVSE) 건물에서 에런 알렉시스(34)로 확인된 흑인 용의자 등이 식당과 홀에 있던 직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총격을 가했다.
목격자들은 한 괴한이 복합단지 내 197번 건물에 있는 식당 위층에서 아래쪽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했으며 또 다른 괴한은 다른 층 복도에서 총을 쐈다고 증언했지만 두 사람이 동일인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목격자들은 용의자들을 ‘침묵의 살인자’ ‘냉혈한’이었다고 증언했다. 무표정한 모습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사람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했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일하는 민간인 테리 더햄은 3층 사무실에서 나오다가 복도 건너편 40야드 밖에서 총을 든 괴한을 발견했다.
괴한은 더햄을 비롯한 동료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했으나 다행히도 빗나갔다. 더햄은 “용의자는 키가 크고 검은 피부였으며 제복 차림에 소총을 들고 있었다”고 말했다. 더햄의 동료인 토드 부른디지는 “괴한은 무표정한 모습이었다”며 “아무런 말이 없고 조용히 총을 발사했다”고 전했다. 팀 지러스 해군장교는 총성이 요란하지 않고 ‘숨죽인 듯’했다고 말했다.
아직 체포되지 않은 또 한 명의 용의자가 있는지도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일부 사법 당국은 또 다른 흑인 한 명이 공범인 것으로 보고 있지만 캐시 레이니어 워싱턴DC 경찰국장은 이날 밤 “공범이 있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어 알렉시스의 단독범행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구멍난 군 시설의 보안문제가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사고 현장에서 포토맥강만 건너면 2001년 9·11테러 당시 항공기 테러로 일부 건물이 파괴된 펜타곤(국방부 청사)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범인들이 합법적인 통과증을 가졌을 수도 있지만 민간인 신분으로 실탄이 장전된 총기를 들고 군 주요 시설로 들어갈 수 있었다는 것은 보안에 허점이 있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는 금속탐지기와 가방 검색대가 없었다고 보도했다. 이날 범행은 미국 내 군 시설에서 4년 동안 3번째 발생한 총격 사건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말대로 군인들이 해외 전장이 아니라 미국 내 군 시설에서의 총격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한편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이날 사건은 1982년 발생한 ‘에어플로리다’ 항공기 추락 사고 이후 워싱턴DC에서 발생한 사건·사고 가운데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것으로 기록됐다. 기록적인 폭설이 쏟아졌던 82년 1월 13일 워싱턴DC 로널드레이건공항(당시 워싱턴내셔널공항)을 이륙한 에어플로리다의 보잉737 여객기가 30초 만에 인근 포토맥강에 추락한 당시 사건으로 78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