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용신] 눈빛이 흔들리지 않았어요

입력 2013-09-17 15:21


지난주 힐링캠프에 출연한 이지선씨가 화제다. 지선씨는 13년 전 대학생 시절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몸의 55%에 3도 화상을 입은 채 40여번의 대수술을 거치고서야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심한 화상은 일그러진 얼굴을 남기고 양 손의 엄지를 제외한 나머지 손가락들마저 앗아간 상태. 그런데 그녀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 바로 지금이라고 말했다. 사고 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지금 그녀는 미국에서 사회복지학 박사과정을 밟으며 자신과 타인을 위한 꿈을 꾸고 있다.

나는 ‘지선아 사랑해’라는 책을 통해 오래 전부터 그녀의 사연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한 간증 프로그램에서 그녀가 했던 이야기 하나를 오래 기억해두고 있다. 자신의 모습에 절망하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를 물었을 때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사고 후 병원으로 옮겨져 화상 수술을 받고 얼굴을 둘둘 감고 있었던 붕대를 처음으로 풀던 날, 제 얼굴을 본 엄마의 눈빛이 흔들리지 않았어요∼.” 화상으로 일그러진 딸의 얼굴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아서, 그녀는 ‘내가 사고 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괜찮은 사람이구나∼’ 했다는 이야기. 사고 전이나 사고 후나 자신을 바라보는 엄마의 눈빛이 여전했다는 것. 한 존재를 향한 흔들리지 않는 눈빛이, 얼마나 그 존재에게 안정감을 주고 존엄감을 부여하는 것인지 나는 그때 처음 알았다.

그 이야기가 한동안 내 심장을 뻐근하게 하는데, 갑자기 떠오르는 한 동료의 이야기. 갑상선암 수술을 받고 집에서 누워 있는데 부인이 빨래를 개라고 하더란다. 자기는 암환자니까 부인이 이제 그런 거 안 시킬 줄 알았단다. “나 환자잖아∼”라고 해도 듣는 둥 마는 둥, 산더미 같은 빨래더미를 자기 앞으로 밀어주더라나. 근데 이상하고 묘하게 기분이 좋더란다. 부인이 진짜 대단해보이고 마음이 푹 놓이더라고. 그러고 보니, 넘어진 아이는 호들갑떠는 부모를 보는 순간 막 울기 시작한다. 부모가 아무 일 없는 듯 바라보면 자기도 아무 일 없는 듯 스스로 손 털고 일어나는데.

넘어지고 실패하고 약하고 서툴고 일그러지고 못난 나의 존재에 대한 근원적 안정감은 나를 바라보는 흔들리지 않는 눈빛이다. 그 눈빛을 느껴본 사람은 편해지고 너그러워진다. 그 안정감을 바탕으로 다시 일어설 힘을 낸다. 이런 흔들리지 않는 눈빛을 만나기 위해 추석명절이 있는 게 또 아닐까.

김용신(CBS아나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