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선별 복지로 돌아서고 增稅는 국민 동의 구해야
입력 2013-09-17 15:18
현 정부가 증세(增稅) 기조로 돌아설 기미를 보이고 있다. 예산을 투입할 곳은 많은 데, 쓸 돈이 크게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그동안 박근혜정부가 증세에 부정적 입장을 피력했다는 점에서 중대한 정책 변화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3일 국회 업무보고 자료에서 “비과세·감면 정비, 지하경제 양성화 등을 우선적으로 추진하고 추가 재원이 필요하면 사회적 공론화를 거쳐 세입 확충 폭과 방법에 대한 합의를 도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근혜 대통령이 16일 여야 대표와의 3자 회동에서 “세출 구조조정과 비과세 축소로 복지 재원을 마련하고 그래도 부족하면 국민 공감대 하에 증세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증세는 곤란하다는 입장과 차이가 나는 발언이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법인세율을 인상하는 것은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강조했다. 야당의 법인세 인상 요구를 일축한 것이다.
올해 세수는 7조∼8조원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상반기에만 세수 부족액이 10조원이었지만 하반기에 2조∼3조원의 세금이 더 걷힐 것으로 전망한 데 따른 것이다. 올해보다는 내년이 더 큰 문제를 안고 있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이날 당정협의를 갖고 복지예산이 사상 최초로 100조원을 넘어선다는 내용의 2014년도 예산안 밑그림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내년에 4% 안팎의 경제성장이 가능하다고 보고 예산안을 편성했다. 하지만 국내외 경제 사정이 그리 녹록한 것은 아니다. 예상보다 성장률이 저조하면 곳곳에서 복지예산이 펑크날 수밖에 없다. 복지예산을 감당하려고 마냥 추가경정예산을 강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정부는 복지정책 프레임을 재조정할 필요가 있다. 한번 시행한 복지정책은 되돌리기가 만만치 않다. 수혜자들의 반발이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정권의 명운을 걸어야 할지도 모르는 사안이다. 정부는 보편적 복지를 밀어붙이지 말고 선별적 복지로 돌아서야 한다. 먹고살 만한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가난하고 어려운 이들을 집중적으로 보듬는 정책으로 선회하기 바란다. 이것이 부의 분배와 양극화 해소에 부응하는 길이다.
법인세 증세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법인세 인상은 기업의 수익성 악화, 투자 위축,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만약 정부가 법인세를 동결한다면 기업의 투자 활성화를 적극 유도해야 한다. 경제 불확실성을 이유로 투자를 기피하면서 천문학적 규모의 사내 유보금만 쌓아놓게 해선 안 된다. 소비세나 소득세를 인상하려면 사전에 반드시 국민의 이해를 구해야 한다. 다만 국민 건강을 해치는 담배와 술에 대해선 세금 인상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