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갈등 격는 말레이시아, 말레이계 우대정책… 중국계 “찬밥” 반발
입력 2013-09-16 18:24
빈부격차 해소 등을 명목으로 말레이시아에서 이뤄지고 있는 말레이계 주민 우대정책 ‘부미푸트라’가 확대된다고 월스트리트저널 등이 16일 보도했다. 이에 반발한 중국계 주민의 이탈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여 논란도 확산되고 있다.
논란의 발단은 나집 라작 말레이시아 총리가 14일 국영방송 연설을 통해 “중국계·인도계 주민과 말레이계 주민의 빈부격차 해소를 통한 경제부흥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94억 달러에 달하는 경제지원을 말레이계 주민에게 확대하겠다고 밝히면서부터다.
우대정책 중에는 기업대출과 일자리 할당뿐만 아니라 정부계약이나 기술훈련 비용 지원, 빈곤층을 위한 주택 제공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전체 2900만명의 인구 중 68%를 차지하고 있는 말레이계 주민은 1971년부터 대학 입학이나 공무원 임용, 주택 분양 등에서 혜택을 누려왔다. 중국계 주민과 교육수준이나 임금 격차 등의 차이를 좁힌다는 명목이다.
나집 총리가 특정 인종에 대한 특혜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우대정책 확대를 결정한 것은 다음 달로 예정된 집권 통일말레이국민기구(UMNO) 총재 선거를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총재 자리를 놓고 나집 총리와 겨룰 경쟁자가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말레이계 강경파 세력은 나집 총리에게 우대정책 확대를 줄곧 요구해 왔다.
2010년 집권한 나집 총리는 경제개혁의 일환으로 우대정책 전면 재검토를 약속했었다. 그러나 집권당내 강경파의 반발과 당내 역학관계 등으로 인해 개혁 정책을 후퇴시켰다. 정치분석가들은 나집 총리의 이번 조치로 말레이시아의 경제개혁은 물론 경쟁력 향상도 물 건너갔다는 분석을 하고 있다.
특히 경제권을 장악한 것으로 알려진 중국계 주민의 반발은 거세다. 지난 5월 치러진 총선에서도 중국계 주민들은 우대정책에 반발해 야당에 몰표를 던진 바 있다. 또 일부 중국계 주민은 싱가포르나 호주 등으로 이민을 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세계은행은 2011년 보고서를 통해 말레이시아의 우대정책으로 중국계 주민 등 고급 두뇌유출이 100만명에 달한다면서 경제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 관련 기관에서 비서로 일하는 누라이니 이스마일(26·여)은 “총리의 정책을 지지한다”면서 “말레이계 주민에 대한 도움이 절실하고 뒤처지지 않게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야당은 이번 조치를 전근대적인 정책이라고 맹비난을 퍼부었다. 닉 나즈미 닉아메드 의원은 “잘못된 정책으로 인해 많은 사람이 대가를 치르고 있다”면서 “이런 정책이 계속되면 두뇌유출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비난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