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화해모드] “반공포로인 나 때문에 얼마나 핍박 받았을까” 애끓는 이산가족 사연들
입력 2013-09-16 18:16
남북적십자사가 16일 교환한 추석 이산가족 상봉 대상자 최종 명단에 포함된 남측 이산가족들은 지난 60여년간 그리워했던 형제와 자매, 자식들을 만나게 됐다. 우리 측 대상자 96명은 25∼27일 재북(在北) 가족을, 북측 대상자 100명은 28∼30일 재남(在南) 가족을 각각 금강산에서 상봉한다. 남측 최고령자는 김성윤(95·여)씨다. 남측 상봉 대상자 연령은 90세 이상이 28명, 80∼89세 48명, 70∼79세 14명, 69세 이하 6명이다. 상봉할 북측 가족이 부부·자녀인 사람은 21명, 형제·자매 52명, 3촌 이상은 23명이다.
◇반가움과 미안함이 교차하는 마음=우리 측 상봉 대상자로 선정된 백관수(90) 할아버지의 목소리는 만감이 교차했다. 평안북도 영변이 고향인 백 할아버지는 반공포로 출신이다. 6·25전쟁 때 고향에서 인민군에 징집됐다 국군에 포로로 잡혀 거제 포로수용소에서 남한을 선택했다.
부모와 이복동생, 아내, 세 살배기 아들을 두고 내려왔던 그는 이번 생사 확인을 통해 부모, 아내뿐 아니라 아들도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다행히 손자와 이복동생은 살아있어 상봉 때 만나게 됐다. 그는 손자를 만나는 것에 대해 “얼마나 귀엽겠나. 애들 얼굴을 만져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을 것”이라고 기뻐했다. 하지만 이복동생을 만난다는 생각에는 마음 한쪽이 무겁다고 했다. 포로수용소에서 남한을 선택한 만큼 북에 남아있던 가족들이 북에서 핍박을 받았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백 할아버지는 “올해 일흔여덟 살인 이복동생은 어려서부터 같이 살았다. 그런데 형이 반공포로가 됐으니 그 세월 동안 얼마나 힘들었겠나. 나한테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고 심경을 전했다. 백 할아버지는 “그래도 만나야 한다. 가족이니까”라고 말했다.
◇병상에서도 헤어진 가족 만날 생각에 웃음=노환으로 요양원에서 지내고 있는 최고령자 김성윤 할머니도 북에 있는 가족을 만난다는 생각에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평안북도 신의주에 살던 김 할머니는 해방 직후 북한이 재산을 몰수하자 남편을 따라 서울로 내려왔다. 당시 친정아버지가 “세상이 험해지니 남동생 두 명을 함께 데리고 가라”며 김 할머니에 딸려 보냈고, 부모와 여동생 셋만 고향에 남게 됐다. 하지만 전쟁 통에 김 할머니는 친정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했다. 김 할머니는 “그때 내가 어려서 친정 식구들을 챙기지 못하고 같이 내려가자고 하지 못한 게 한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북에 살아있는 여동생 두 명과 조카를 만난다. 하지만 이번 행사 때 남쪽으로 같이 내려온 남동생은 함께 가지 못한다. 김 할머니 딸은 “외삼촌도 북의 이모들을 봬야 하는데 보호자는 자식만 되고 형제는 안 된다고 하더라”며 “빨리 제도가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달 걸릴 것이라고 했는데 이렇게 길 줄이야”=해방 당시 평양에 살던 이경주(81) 할아버지는 가족과 헤어지던 날을 잊지 못한다. 그는 6·25전쟁 때 징집을 피해 고향에 어머니와 여동생을 남겨둔 채 단신으로 남한에 내려왔다. 이 할아버지에겐 당시 “곧 올라온다”며 가족을 다독이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하지만 어머니와 여동생은 모두 세상을 떠났다. 그래도 조카들을 만나 가족들이 긴 세월 어떻게 살아왔는지 물어보고 싶다고 한다. 이 할아버지는 “한 달이면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옛 시절이 생각나 요즘 밤잠을 설친다”고 말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