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고성윤] 北 비핵화 딜레마 접근 방법은

입력 2013-09-16 18:28


북한이 한결 누그러진 모습이다. 을지연습 기간 이산가족 상봉에 합의한 것도 이례적이다. 이를 두고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이하 신뢰프로세스)의 성과와 연결하는 기대 섞인 평가도 있다. 그러나 한반도 문제의 관건은 ‘북한 비핵화’다.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버젓이 명시한 북한이다. 최근에는 영변 원자로 재가동 징후라는 위성사진도 공개됐다.

어떻게 신뢰프로세스와 북한 비핵화를 동시에 추진할 수 있을까. 여기서 주목할 것은 신뢰프로세스의 궁극적 목표가 남북관계 발전을 통한 ‘통일기반의 구축’이며, 그 과정에서 북한의 비핵화는 당연한 일이다. 일각의 우려와 달리 신뢰프로세스와 북한 비핵화는 상호 모순되는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신뢰프로세스는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을 강화해 북한 핵개발이 파생한 남북한과 중국의 딜레마를 경감시키고, 협력 방안을 함께 찾아가는 선순환의 과정이다.

북한에 국제 제재는 버거운 것 같다. 제재 강도가 전례 없이 세고 중국마저 적극 동참해 적잖이 놀라는 눈치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가장 큰 딜레마는 제재 강도가 강해질수록 정권의 토대인 주민들의 충성심이 훼손되는 점이다. 제재의 고통은 아래서부터 느낀다. 유명무실한 배급제는 대다수 주민들을 ‘장마당’으로 내몰고 있지 않는가. 각자 알아서 생계를 해결해야 하니 불만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처벌이 두려워 ‘존엄’을 비난할 수 없지만, 관료들의 부패를 핑계로 볼멘소리를 터뜨린다. 남북협력 확대 또한 양날의 칼이라 북한의 고민거리다. 개성공단 사업으로 생계에 도움 받는 주민이 20만명에 이른다지 않는가.

중국의 딜레마도 복합적이다. 밖으로는 북한 비핵화에 책임감 있게 행동하라는 국제사회의 요구에 응해야 하고, 핵개발 도미노와 미국 핵우산으로의 쏠림 가능성도 부담이다. 안으로는 북한 비핵화를 종용하는 여론도 신경쓸 처지다. 그러니 중국도 강도 높은 유엔 안보리 결의 2094호와 함께 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만일의 상황’을 우려해 북한을 마냥 몰아붙일 수도 없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딜레마는? 북한 비핵화와 신뢰프로세스를 조화롭게 엮는 일이다. ‘투트랙’으로 접근한다고 하나 쉬운 일은 아니다. 국제사회가 대북제재에 적극적인데 당사자인 우리가 북한과의 신뢰 구축을 내세워 무작정 경협을 진행하고 지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금강산 관광 재개도 그렇다. 금융제재 중인데 과거 식의 금강산 관광은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남북한과 중국이 모두 직면하고 있는 딜레마가 고착화된 게 아니라 유동적이라는 점은 다행이다. 필자는 우선 한국의 딜레마를 푸는 노력, 즉 신뢰프로세스 추진이 답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박근혜정부의 신뢰프로세스 이니셔티브에 대한 국제사회의 폭넓은 지원이 있기 때문이다. 미·중 정상에 이어 러시아 푸틴 대통령이 신뢰프로세스를 지지한 것은 의미가 매우 크다. 이제는 정상외교의 정신을 살려 다층적 접촉채널을 구축해 신뢰를 심화시켜 나갈 단계이다.

다음은 북한을 설득하는 일이다. 따라서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 수로가 비핵화라는 원칙이라면 신뢰프로세스는 장애물을 돌아 유연하게 흐르는 물과 같다. 북한이 관심을 갖는 신뢰프로세스 프로그램을 제공해 딜레마로부터 벗어날 출구를 함께 찾도록 모멘텀을 만들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특사도 파견해야 한다. 여건이 조성되면 가까운 장래에 남북 정상회담도 고려해볼 만하다. 지금은 유엔 및 국제사회와의 조율을 기반으로 북한을 압박하면서 남북한 간 신뢰를 쌓을 수 있는 정교하고도 유연한 신뢰프로세스를 가동할 때다.

고성윤 한국국방연구원·국방현안연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