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박철] 글로벌이 살 길이다
입력 2013-09-16 18:30
“한국유학 지망생 가로막는 한국어능력 입학자격 규제, 졸업자격으로 전환해야”
21세기를 특징하는 단어는 글로벌이다. 국가는 물론이고 기업도, 대학도 글로벌이다. 개인도 해외여행을 일상화하고 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10만㎢도 안 되는 분단국가가 한강의 기적을 이룩했다. 한국은 2년 연속 무역액 1조 달러를 돌파한 세계 8위 무역대국이 됐다. 중동, 아프리카, 중남미, 동남아 국가에서 한국의 경제 기적 비결을 배우기 위해 국내 대학으로 유학생들이 몰려오고 있다.
국가 경제 수준과 외국 유학생의 입국은 비례한다고 본다.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해외 유학생들이 모여드는 곳은 미국 영국 호주 프랑스 독일 일본 캐나다 순이다. 이제 한국도 해외 유학생 8만여명에 달하는 국가가 됐다.
우리가 어려웠던 시절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정부의 공적개발원조자금(ODA)으로 공짜 유학을 했다. 우리도 그들 나랏말이 서툴렀다. 그러나 열심히 배운 덕분에 지금의 한국을 이룩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도 2010년에는 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해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되었다. 개발도상국에 병원과 학교도 지어주고 있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도 ODA로 영어권 국가와 아프리카 불어권 국가 공무원 37명을 위해 석사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우리가 어려웠던 시절 받았던 은혜를 이제는 갚아주고 있다. 지난해 국민총소득의 0.14%에 해당하는 15억5000만 달러를 ODA 자금으로 사용했다.
최근 한국에 온 유학생 수가 급증했다. 그중에는 유학을 가장한 불법 입국자도 있었을 것이다. 그것이 빌미가 되어 지난 MB 정부에서는 유학생 인증 제도를 만들어 한국어 시험(TOPIK) 4급에 합격한 학생들만 대학 정규 과정에 입학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그 결과 한류에 매력을 느껴 오던 외국 유학생들이 최근 감소 추세로 돌아섰다. 특히 중국 유학생 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 과거 역사에서 중국인들이 수만명씩 한국에 유학을 온 적이 있었던가? 중국은 G2 국가로 변모하고 있는데, 그리고 중국은 GDP의 4%를 고등교육에 쏟아붓고 있는데 우리가 중국 유학생을 대하는 정책은 방만하기 짝이 없으며 비전략적이다.
한국에 매력을 느끼고 유학 오는 중국, 유럽, 아프리카, 중남미 학생들이 많은데 한국사회는 오히려 부담을 갖고 이들을 한국어 능력이 안 된다고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솔직히 한국어가 영어처럼 세계 공용어는 아니다. 미국 대학이 외국인에게 토플 점수를 요구하는 것과 TOPIK 4급을 요구하는 우리의 사정은 좀 다르다.
한국을 배우러 찾아오는 외국 유학생들에게 졸업 때까지 한국어 능력 시험을 4급까지 따도록 한다든지, 아니면 토플 영어 점수도 병행해 요구한다면 유럽이나 중남미, 아프리카에서 오는 친한파 유학생들을 한국어 못 한다고 따돌리는 우를 피할 수 있다고 본다.
대한민국은 국제화로 세계에 우뚝 선 대표적인 나라다. 우리나라도 과거 어려운 시절 미국으로 간 유학생들이 밤에는 식당에서 접시를 닦는 등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석사, 박사를 땄다. 물론 영어도 잘 못했다. 그런 우리가 한국어를 못 한다고 무조건 외국 유학생들을 받아주지 않는 것이 글로벌 정책인지 묻고 싶다.
더욱이 국내 대학들은 최근 학령인구 감소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대학 구조조정도 요구받고 있다. 외국 유학생들에게 교육 문호를 좀더 개방해 준다면 한국 대학들의 재정 활성화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의 외국 유학생 정책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최근 삼성 LG 등 대기업도 우수 인재를 해외에서 채용하고 있다. 우리 한국인들끼리만의 대학 교육, 기업 경영으로는 세계적 대학도, 기업도 될 수 없다. 21세기에는 국경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 그런 만큼 누가 더 다국적 인재를 영입하고 교육하는가, 혹은 다문화 사회를 수용하느냐에 국가의 발전과 미래가 달려 있다.
박철 한국외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