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극장가] 스크린 상차림도 푸짐… 골라보는 재미가 있다

입력 2013-09-16 17:06


올해 추석 극장가 대표 주자는 배우 송강호 주연의 사극 ‘관상’이다. 지난 11일 개봉한 ‘관상’은 개봉 5일 만에 관객 250만명을 넘기며 압도적인 우세를 보이고 있다. 추석 연휴에도 이 기세를 이어나갈 전망이다. 그 뒤를 설경구 문소리 주연의 코미디영화 ‘스파이’가 잇고 있다.

아이뿐 아니라 어른들도 좋아할만한 애니메이션도 있다. 10대 소녀들의 감성에 맞춘 판타지 영화와 상업영화에 질린 관객을 위한 색다른 영화도 나왔다. 상차림은 푸짐하고 다양하다. 골라보는 재미가 있는 추석 극장가, 그 메뉴판을 들여다본다.

◇한국 영화 ‘관상’과 ‘스파이’=‘관상’ (감독 한재림)은 조선시대 가장 극적인 사건 중 하나인 계유정난을 배경으로 한다. 계유정난은 단종 때 수양대군이 왕위를 빼앗기 위해 일으킨 사건. ‘관상’은 몰락한 양반과 ‘관상’이라는 소재를 결합시켜 역사적 사건을 바라본 팩션(Faction)이다.

주인공은 역적의 자식으로 시골에 은거한 조선 최고의 관상가 내경(송강호). 그는 기생 연홍(김혜수)의 제안을 받고 처남 팽헌(조정석)과 함께 한양으로 오게 된다. 그곳에서 그의 실력을 알아본 당대 실력자 좌의정 김종서(백윤식)의 눈에 든다. 김종서는 내경을 문종(김태우)에게 천거하고, 내경은 왕의 명으로 수양대군(이정재)의 관상을 보러간다.

관상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신선하고, 드라마도 탄탄한 편이다. 특히 초반 송강호와 조정석의 코미디 연기는 관객을 빨아들인다. 100억원대의 제작비가 들어간 대작답게 미술과 의상도 화려하다. 요즘 대세로 떠오른 이종석, 존재감 빛나는 이정재도 눈길을 끈다. 다만 내경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다보니 수양대군과 김종서를 바라보는 시선이 단편적이고, 코미디로 시작해 비극으로 끝나는 무거운 분위기는 아쉬운 대목이다. 15세가. 142분.

그에 비하면 ‘스파이’(감독 이승준)는 훨씬 가볍다. 명절을 맞아 할아버지부터 손자까지 3대가 함께 극장에 갔는데 다 같이 볼 영화를 골라야 한다면? 바로 이 영화다. 그야말로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대사 좀 놓치면 놓치는 대로 그냥 웃으면 되는 ‘팝콘 영화’다. 주인공은 대한민국 최고의 스파이 김철수(설경구). 하지만 ‘마누라’ 영희(문소리)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하는 평범한 남편이기도 하다. 아내 몰래 스파이 활동을 벌이고, 어찌하다 보니 아내까지 스파이 임무를 떠안는다는 설정이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트루 라이즈’과 비슷해 ‘카피 영화’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두 주연배우는 물론 조연 고창석과 라미란의 코믹 연기가 영화에 생기를 불어 넣는다. 15세가. 121분.

◇어른들도 좋아할만한 애니메이션=대표 주자는 ‘몬스터 대학교’(감독 댄 스캔론). 2001년 공전의 히트작인 ‘몬스터 주식회사’의 이전 이야기다. 회사 동료 마이크와 설리반이 사실 대학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라이벌이었다는 설정. 이들이 경연대회를 통해 진정한 자아를 만나고 서로 이해하게 된다는 이야기. 매력적인 몬스터 캐릭터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미국. 전체가. 110분.

‘슈퍼배드 2’(감독 피에르 꼬팽·크리스 리노드)는 올해 전 세계에서 개봉한 만화영화 중 최고의 흥행성적을 거둔 영화. 슈퍼악당에서 딸 바보로 변신한 악당 그루의 이야기다. 세 딸과 함께 행복한 삶을 살고 있던 그루는 세상을 지배하려는 최강 악당 군단이 나타나자 비밀요원으로 변신해 악당 소탕작전에 투입된다. 귀여운 캐릭터와 오밀조밀한 이야기가 강점이다. 소녀시대 태연과 서현이 목소리 연기를 맡았다. 미국. 전체가. 98분.

MBC 예능 ‘아빠! 어디가?’에 출연 중인 김민국과 송지아가 더빙을 맡은 애니메이션도 있다. ‘프리버즈: 밍쿠와 찌아의 도시 대탈출’(감독 구스타보 지아니니·다니엘 드 필립포)은 자유를 향한 새들의 모험담. 관심 받고 싶은 참새 밍쿠와 ‘얼짱’ 카나리아 찌아의 도시 탈출 이야기를 다뤘다. 아르헨티나. 전체가. 74분.

◇소녀 감성에 맞춘 판타지 액션=‘섀도우 헌터스: 뼈의 도시’(감독 해럴드 즈워트)는 10대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끈 ‘트와일라잇’을 연상시키는 영화. 악마를 사냥하는 섀도우 헌터들의 이야기에 선남선녀의 가슴 뛰는 로맨스를 담았다. 늑대인간, 뱀파이어의 등장도 ‘트와일라잇’의 분위기를 뿜어낸다. 반항아처럼 생긴 거친 꽃미남과 평생 자신을 지켜주는 자상한 남자가 한 여자를 좋아한다는 설정은 소녀 관객들이 딱 좋아할 만한 이야기. 할리우드에서 주목받는 여배우 릴리 콜린스의 연기도 합격점이다. 미국·독일. 15세가. 130분.

‘퍼시잭슨과 괴물의 바다’(감독 쏘어 프류덴탈)는 2010년작 ‘퍼시 잭슨과 번개도둑’의 후속편. 포세이돈의 아들 퍼시와 아테네의 딸 아나베스가 마을을 지키기 위해 황금 양피를 찾으러 괴물의 바다로 떠난다는 이야기. 컴퓨터그래픽 장면이 많은데 자연스러운 맛이 덜해 아쉽다. 미국. 12세가. 106분.

◇개봉관은 적지만 여운은 큰 영화=홍상수 감독의 ‘우리 선희’는 언어와 소통의 한계에 대해 에둘러 말하는 철학적인 코미디. 미국 유학을 준비하는 영화과 졸업생 선희(정유미)와 세 남자가 주인공이다. 선희의 교수인 최 교수(김상중), 옛 애인 문수(이선균), 대학 선배 재학(정재영)은 동시에 선희에게 호감을 갖고 고백한다.

88분의 상영시간 중 한자리에서 커트 없이 촬영된 롱테이크가 무려 25분에 달한다. 술집 어딘가에서 일어날 것 같은 사실적인 장면이 인상적이다. 조미료를 팍팍 친 것처럼 흥행 공식을 따르는 상업영화에 질린 관객이라면 만족할 만하다. 제66회 스위스 로카르노 영화제 감독상 수상작. 청소년관람불가. 88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사랑에 빠질 확률’(감독 구스타보 타레토)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젊은이들의 외로움과 막막함을 세련된 감성과 감각적인 영상으로 그려냈다. 가까이 있는 두 남녀가 무미건조한 일상 속에서 어긋남을 반복하다가 마침내 만나게 되는 이야기 구성이 한국영화 ‘접속’과 닮았다. 아르헨티나. 15세가. 94분.

‘낭만파 남편의 편지’(감독 최위안)는 소설가 안정효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작품. 13평 규모의 소극장 연극무대에서 촬영, 연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권태기 부부에게 전해진 한 통의 연애편지를 소재로 한 미스터리 형식의 로맨스. 청소년관람불가. 97분.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