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情 나누는 한가위] 흐드러진 메밀밭 속삭임… 부부싸움 한번 안해

입력 2013-09-16 16:44


‘봉평 잉꼬’ 곽문규-전미향씨 부부의 추석 맞이

이효석 단편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인 강원도 평창의 봉평은 추석을 앞두고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피기 시작했다. 달빛에 젖은 메밀꽃밭에서 성서방네 처녀와 생애 단 한 번의 사랑을 나눈 허생원은 방울소리 처량한 나귀를 끌고 동이와 함께 봉평장에서 대화장까지 팔십리길을 달빛을 등불삼아 타박타박 걷는다. 이지러진 보름달로 보아 추석을 이삼일 지난 무렵이리라.

허리 깊이의 물을 건너다 빠진 허생원은 동이의 등에 업혀서도 정겨운 이야기꽃을 피운다. 아비의 성은 무엇인가? 어미는 어떻게 살고 있나? 동이와 함께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던 허생원은 동이의 어미가 산다는 충북 제천으로 방향을 잡는다. 그리고 동이가 자기처럼 왼손잡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모처럼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이는 추석 명절이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추석 명절이 달갑지 않은 존재로 여겨지는 씁쓸한 세태다. 시댁에서 음식을 만들고 설거지 등 뒤치다꺼리를 도맡아야 하는 주부들은 ‘명절 증후군’에 달력의 빨간 숫자만 봐도 스트레스가 쌓인다. 이런저런 이유로 형제간의 다툼이 이어지기도 하고, 추석 쇠고 와서 이혼하는 부부도 늘고 있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한 탓이리라.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인 봉평에서 살고 있는 곽문규(60)·전미향(54) 부부는 동네에서 알아주는 잉꼬부부다. 봉평이 고향인 부부는 반평생을 함께 살아오는 동안 이렇다 할 부부싸움 한 번 안하고 살았다. 서로 자존심이 강해 집안의 대소사를 두고 의견충돌이 일어날 법도 하지만 서로 배려하고 양보하는 마음으로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그리고 그 지혜의 근저에는 대화가 자리하고 있다.

작가 이순원의 ‘아들과 함께 걷는 길’은 아버지가 아들과 함께 대관령 서른일곱 굽이를 걸어 내려오면서 주고받는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소설은 평소 대화가 없던 부자(父子)가 각 굽이마다 한 가지 주제를 정해 소통하고 교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집안의 역사와 조상들의 삶과 족보를 이야기하면서 가족의 정체성도 확인했다. 마침내 대관령 고개 아래 고향집에 도착했을 때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 사이 불화도 눈 녹듯 사라진다.

어느 해보다 긴 추석연휴로 인해 귀성객이 사상 최대 규모라고 한다. 고향 오가는 길에 잠깐 틈을 내 부자간이든 부부간이든 깊어가는 가을 길을 함께 걸으며 대화를 나눠보자. 그리고 상대에 대한 배려와 이해로 명절 때마다 불거지는 갈등의 매듭도 풀어보면 어떨까.

평창=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