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의 여행] 파울로 코엘료 ‘아크라 문서’
입력 2013-09-15 18:51
세계적인 작가 파울로 코엘료(66)는 2011년 의사로부터 심장에 문제가 생겨 얼마 살지 못한다는 진단을 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심장수술을 받고 극적으로 건강을 회복한 그는 그동안 느끼고 깨달았던 인생의 지혜를 후대에게 전해줄 작품을 구상한다. 그가 선택한 글쓰기 형식은 옛 그리스의 철학적 토론과 흡사한 질문과 답변이었다.
코엘료의 신작 소설 ‘아크라 문서’(문학동네)는 십자군 침략을 하루 앞둔 날 이뤄진 현자와의 대화가 아크라 문서로 기록돼 후대에 발견된다는 설정 말고는 소설의 형태를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질문과 답변으로 삶의 지혜를 전하는 경전에 가까워 보인다.
공간적 배경은 기독교인, 유대인, 이슬람교인이 평화롭게 공존하던 예루살렘의 광장. 이들은 적군의 침략이 당장 내일로 닥친 상황에서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콥트인 현자를 바라본다. 뜻밖에도 현자는 설교 대신 “그대들이 질문을 하면 답을 하겠다”며 군중들로부터 질문을 받는다.
첫 질문은 “패배에 대해 말씀해 달라”는 것이었다. 콥트인은 대답한다. “겨울이 되어 나무에서 떨어지는 나뭇잎은 추위에 패배한 것일까? 나무는 나뭇잎에게 말한다. ‘이게 바로 순환이란다. 넌 죽는다고 여기겠지만 넌 내 안에서 계속 살아가게 될 거야. (중략) 네 수액이 내 수액이 되었으니 우린 하나란다.”
예루살렘에서 도망쳐야 하는 신세가 된 젊은 여인은 ‘고독’에 대해, ‘알미라’라는 이름의 침모는 ‘변화에의 두려움’에 대해, 아직 짝을 찾지 못한 여인은 ‘사랑’에 대해 각각 질문한다. 이런 질문들은 전쟁과 죽음을 목전에 둔 군중들 치고는 너무 목가적이다. 하지만 진리란 단순한 데 있다는 격언을 상기하면 독자들은 뜻밖의 진리를 움켜쥘 수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 대목은 이렇게 끝난다. “내가 지상에 평화를 전파하러 왔다고 생각지는 말라. 오늘밤부터 우리는 편협과 몰이해의 악령들과 싸우기 위해 보이지 않는 칼을 들고 세상을 돌아다녀야 한다. 발길이 닿는 곳까지 최대한 그 칼을 지니고 가라.” 코엘료의 작가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문장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