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속한 폐기 수순… 합의파기땐 조치없어 ‘불씨’로
입력 2013-09-15 18:41
미국과 러시아가 14일(현지시간) 발표한 시리아 화학무기 제거 원칙은 신속함을 강조하고 있다. 화학무기금지협약(CWC) 가입을 거부해 온 시리아를 ‘양지’로 이끌어내는 시도지만 시리아가 순순히 응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미·러 합의안은 불응 시에 대한 구체적 조치 방안을 담지 않아 향후 양국이 다시 갈등할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합의안에서 양국은 먼저 화학무기금지기구(OPCW)에 시리아의 화학무기를 신속하게 폐기하고 검증하도록 며칠 내에 긴급 절차를 승인하라고 요구키로 했다. 또 검증과 실질적 이행을 보장하는 조치를 포함해 OPCW의 결정을 유엔이 신속히 채택하도록 협력하기로 했다.
시리아 정부는 현재 보유한 화학무기 이름과 종류, 양은 물론 저장소, 생산·연구시설 등의 현황을 담은 보고서를 1주일 안에 제출해야 한다. 또 OPCW가 즉각 시리아 전역을 조사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하고 조사를 제한해서는 안 된다.
미국과 러시아는 가능하면 화학무기를 시리아 외부에서 처리하도록 하자는 데 합의했다. 시리아 정부는 화학무기뿐 아니라 제조공장, 화학무기 이동장치 등 모든 관련 시설과 장비를 폐기해야 한다.
시리아 정부는 이번 합의안을 반기고 있지만 제대로 이행할지는 확신하기 어렵다는 시각이 적지 않다. 십수년간 CWC 가입을 거부해 온 시리아가 하루아침에 모든 화학무기와 관련 시설·장비를 포기하겠느냐는 것이다.
회의론자들은 시리아 정부가 사찰 전 화학무기를 다른 곳으로 옮겨 은폐하고 축소 보고할 수 있다고 본다. 사찰단을 받아들이더라도 조사를 방해하거나 지연시킬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미·러 합의안은 시리아 정부가 이를 따르지 않거나 화학무기를 이동 또는 사용하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유엔헌장 제7장(평화에 대한 위협, 평화의 파괴 및 침략 행위에 관한 행동)에 따라 조치하도록 했다.
이 규정은 군사적 강제조치와 비군사적 강제조치를 모두 포함한다. 하지만 합의안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응할지는 명확히 규정하지 않았다. 군사적 조치를 요구하는 미국과 이를 반대하는 러시아가 다시 충돌할 여지가 있는 셈이다.
러시아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은 “(이번 회담에서는) 군사력의 사용이나 자동 제재에 대한 얘기는 없었다”며 “시리아의 화학무기 해체 불이행은 유엔 안보리가 다룰 문제”라고 강조했다.
반면 미국은 시리아에 대한 군사 공격 여지를 남겨둔 상태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합의안 발표 후 성명에서 “중요한 진전을 이뤄냈으나 아직도 할 일은 많다”며 “만일 외교가 실패할 경우에 대비해 미국은 행동할 준비태세를 유지해 나간다”고 말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성명에서 “시리아 사태가 잘 해결될 수 있도록 유엔 차원에서도 적극 지원하겠다”며 “시리아에서 화학무기가 사용되는 것을 막고 시리아 국민이 더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정치적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