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자발급·투자이민 쉬워서… 中범죄자 도피처 된 한국

입력 2013-09-16 04:40


살인 등 중범죄를 저지르고 한국으로 도피하는 중국 범죄자가 속출하고 있다. 중국 범죄자들이 한국의 간소한 비자발급 절차를 악용하는 데다 중국 측과의 수사 공조도 걸음마 단계여서 경찰이 수사에 애를 먹고 있다.

이달 초 서울의 한 외국인 전용 카지노에서 불법 사채업을 하다 도박 빚을 갚지 않는 채무자를 호텔방에 감금한 조선족 남성 김모(42)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지난해 9월 베이징에서 유흥업소 종업원을 청부 살해한 뒤 재외동포(F-4) 비자를 발급받아 국내로 도피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국 국적을 보유했거나 부모 또는 조부모 중 한 명이 한국 국적인 사람에게 발급되는 이 비자를 통해 조선족인 김씨는 손쉽게 국내로 들어올 수 있었다. 중국 공안당국이 인터폴 적색수배령을 내리지 않아 출입국사무소도 김씨의 입국을 막을 수 없었다.

지난 10일에는 중국 칭다오에서 폭력조직 부두목으로 활동하며 살인미수와 범죄단체 결성 등의 혐의로 중국 공안의 추적을 받다 한국으로 도피한 인터폴 적색수배자 뤼모(45)씨가 검거됐다. 그는 2011년 5월 좁혀오는 수사망을 피해 발급 절차가 간소한 단기 관광비자를 발급받고 국내로 들어온 뒤 불법 체류자 신분으로 도피생활을 시작했다. 뤼씨는 부하 덩모(36)씨에게 도피 자금 지원을 받아 2년4개월간 강남 일대의 고급 오피스텔과 아파트에서 머물며 호화 생활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덩씨는 지난해 8월 국내에 5억원 이상 투자하면 영주권을 주는 ‘부동산투자이민제도’를 활용해 입국한 뒤 뤼씨의 도피를 돕다 최근 경찰에 덜미를 잡혀 중국으로 강제 추방됐다.

지난 4월에는 중국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가짜 여권으로 취업비자를 발급받아 입국한 조선족 최모(51)씨가 구속됐다. 경찰 조사 결과 최씨는 2003년 중국 선양의 한 주점에서 살인을 저지르고 중국 공안의 추적을 받자 2008년 현지 브로커를 통해 가공 인물의 여권을 만든 뒤 7차례나 한국과 중국을 오고간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 일선 경찰서 외사과 관계자는 “국내 중국인 중 현지에서 신분을 세탁해 국내로 입국하는 경우가 많아 그중 범죄자도 상당수 섞여 있다”며 “심사를 해도 서류상으로는 흠잡을 데가 없어 적발해내기 힘들다”고 밝혔다.

경찰은 국내에 잠입한 중국인 범죄자 수를 정확히 파악하기도 어렵다고 전했다. 특히 중국인 범죄자들이 조선족 틈에 끼어 국내에 정착하거나 2차 범죄를 노리는 점도 문제다. 국제범죄수사를 담당하는 한 경찰관은 “국내에는 한국어와 중국어에 모두 능통한 조선족 사회가 잘 형성돼 있어 중국인 범죄자에게 매력적인 도피처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뤼씨는 한국에서 조선족 내연녀와 동거하며 한국어를 배우고 지인의 명의를 빌려 부동산을 사고 휴대전화를 개통한 것으로 드러났다. 카지노장에서 불법 사채업을 하다 붙잡힌 김씨도 국내에서 손쉽게 공범을 찾아 또다시 범죄를 저질렀다.

경찰 관계자는 “한·중 양국은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지난 6월 상대국으로 도피한 범죄자를 적극 검거·송환키로 협정을 체결했지만 이제 시작하는 단계”라며 “최근 중국 측으로부터 범죄자 10명에 대한 수사 의뢰를 받아 그중 2명을 체포하는 데 그쳤다”고 밝혔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