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건축, 패러다임을 바꾸자] (하) 우리교회 건축은 이렇게

입력 2013-09-15 18:25 수정 2013-09-15 19:45


교회+지역 공공시설 결합한 ‘다목적 공간’ 바람직

“한국에는 두 종류의 교회가 있다. 건축을 준비하는 교회와 건축을 마치고 빚을 갚는 교회다.”

목회자들 사이에서 이런 농담이 오르내릴 정도로 한국교회와 성전건축은 불가분의 주제가 됐다. 하지만 많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은 “이제 성전 건축에 대한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라고 말한다.

◇‘시각을 바꾸면 길이 보인다’=서울 한남동 한남제일교회에서 28년째 시무하고 있는 오창우(59) 목사는 요즘 새 성전 건축을 구상 중이다. 수년 전 현 교회 옆에 1653㎡(약 500평 규모)의 부지를 매입해뒀다. 일반적인 절차대로면 당회와 공동의회 등 내부 구성원들의 의사결정을 거쳐 건축을 추진하면 된다. 하지만 오 목사는 특별한 계획을 갖고 있다. 서울시에 새 교회 부지를 제공하고 건물 건축은 서울시가 맡는 것이다. 교회건물에는 지역 사회에 필요한 실내체육관 2개가 운영된다. 교회 예배당과 각 부서 활동 공간은 주중에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 공연장이나 문화교실 등으로 개방한다. 오 목사는 “지역주민들을 섬기고 함께 소통하면서 ‘마을지기’ 역할을 해온 우리 교회의 ‘섬김’ 정신이 새 성전에 접목됐으면 한다”면서 “당회는 물론 서울시와도 대화중인데 현재 긍정적인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재영 실천신학대 교수는 “이제 단순히 예배만을 위한 공간이라는 교회 건축의 개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분수를 지키면 길이 보인다’=과다한 건축비로 빚더미에 오르지 않으려면 감당할 수준을 초과하는 금융 대출을 자제하는 것이 우선이다. 교회재정건강성운동 실행위원장 최호윤 회계사는 “교회가 건축을 위해 미리 적립해둔 별도 여유자금이나, 교인들의 약정된 건축헌금 범위 내에서 대출금 수준이 고려돼야 한다”면서 “원리금 상환 규모가 교회 본연의 경상적인 활동에 지장을 주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건축 과정 및 절차에 있어서 교회구성원간 충분한 의사소통과 투명한 의사결정도 필수적이다. 담임 목사 뿐 아니라 건축위원회의 주된 멤버가 되는 당회, 특히 장로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건축 설계부터 시공사 선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하는 균형추 역할을 건축위가 담당하기 때문이다. 교회건축 컨설팅업체인 ㈜하람씨엠 김철원 대표는 “‘최고’보다는 형편과 여건에 맞는 ‘최적’의 교회건축에 초점을 둘 것”을 강조했다.

◇“우리교회는 건물이 없어요”=15일 오전 경기도 고양시 풍산중학교 시청각실. 지난해 3월부터 이 곳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너머서교회(안해용 목사) 성도들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건물 사용료는 매주 7만7000원(교육청 기준). 교회 건물이 따로 없으니 전기료나 건물 유지비가 들지 않아 헌금에서 남는 금액은 학생 장학금이나 가정폭력 피해학생 돕기 등에 쓴다.

일정 규모 이상의 교회를 분립·개척하는 사례도 있다. 경기도 부천 상동의 상가건물 4층의 예인교회. 2002년 50명의 성도로 시작한 교회는 400명이 넘어서자, 지난 7월 교인 100여명이 떨어져 나와 인천 부평에 ‘더작은교회’를 분립·개척했다. 정성규 예인교회 목사의 교회분립 지론은 간단했다. “복음으로 승부하기보다 건물과 시설 투자에 치중하면 교회의 본질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큰 것 같아요. 교회 소유와 규모를 최소한으로 줄일 때 섬김과 나눔을 최대한으로 펼칠 수 있습니다.”

부천 고양=글·사진 박재찬 이사야 기자 jeep@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