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긋하게 산책하고 그림보고… 넉넉한 연휴, 마음도 살찐다
입력 2013-09-15 16:43
명절 연휴만 되면 48폭짜리 ‘동양화’에 빠져드는 사람들이 있다. 고스톱 얘기다. 가족들의 원성은 들은 체도 않고 죽치고 앉아 있다. 그러면 소화도 안 되고 스트레스만 쌓일 것이다. 느긋하게 산책도 하고 진짜 그림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내면 더욱 알찬 연휴가 되지 않을까. 가족 단위로 볼만한 전시와 미술축제, 고궁 및 박물관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국공립미술관은 연휴 기간 휴관이 없고 갤러리는 대부분 추석날(19일) 문을 닫는다.
미술관에서 명화 감상하기
경기도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중앙홀에는 영국 출신 세계적인 현대미술가 데이비드 호크니(76)의 ‘와터 근처의 더 큰 나무들’이 설치됐다. 런던 테이트미술관 소장품으로 캔버스 50개를 연결한 폭 12m, 높이 4.5m의 대형 풍경화다. 호크니의 최근 작업 경향을 가장 완성도 있게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제작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데이비드 호크니: 더 큰 그림’도 상영된다. 관람료 2000원(02-2188-6000).
서울 남현동 서울시립남서울미술관에서는 도예 작가 이윤신(53)의 ‘흉내 낼 수 없는 일상의 아름다움’이 열린다. 25년간 수공예 생활자기를 제작해온 작가의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작품 300여점이 전시된다. 남서울미술관은 1905년 벨기에 영사관으로 건립된 건축물을 2004년 전시공간으로 리모델링했다. 도자기 유리 목가구 등 작가가 직접 빚은 작품들이 고풍스런 정취가 남아 있는 미술관과 잘 어울린다. 무료 관람(02-598-6247).
서울 옥인동 남정 박노수(1927∼2013) 화백의 생가에 종로구립 박노수미술관이 최근 들어서 ‘달과 소년’이라는 타이틀로 개관전이 열린다. 작가가 기증한 작품 1000여점 가운데 한국적인 서정이 듬뿍 담긴 수묵 담채화 30여점을 내걸었다. 이 미술관은 1938년 친일파 윤덕영이 딸에게 지어준 집으로, 박 화백이 1973년 사들여 지난 2월 별세할 때까지 거주했다. 주변 경관을 둘러보면서 한국화 1세대 작가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괜찮다. 무료 관람(02-2148-4171).
갤러리에서 다양한 작품 관람하기
서울 소공동 롯데갤러리는 전국 방방곡곡의 장인과 재주꾼 35명의 작품을 모아 ‘백수백복 만물상’을 연다. 점점 잊혀져 가는 전통 공예 및 디자인 작품이 계속 만들어지고 우리 생활 속에서 쓰이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기획했다. 싸릿대, 갈대, 억새 등으로 전통 빗자루를 4대째 만들고 있는 이동균 명장의 작품 등 100여점을 만날 수 있다. 공예가와 디자이너들이 제작한 추석맞이 선물세트도 공개된다. 무료 관람(02-726-4428).
서울 충무로 신세계갤러리는 조선 후기 여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규방문화와 목가구’ 전을 마련한다. 규방에서 쓰이던 공예품과 목가구 등 160여점을 전시한다. 규방은 부녀자가 거처하는 방으로, 여인들의 일상적인 생활은 물론이고 문화와 예술이 살아 숨쉬는 공간이었다. 바늘쌈지 실패 골무 가위 등이 담긴 반짇고리, 외모관리를 위한 화장구와 장신구, 실용적이면서도 단아한 장식미를 갖춘 이층장 등이 볼만하다. 무료 관람(02-310-1921).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는 인도 출신 여성작가 바티 커(44)의 국내 첫 개인전이 열린다. 영국 이민자 부모를 둔 작가는 1991년 런던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이듬해 인도를 여행하다가 그곳에 정착해 활동하고 있다. 인도 여성들이 미간에 찍는 ‘빈디’(점)를 캔버스에 하나하나 붙여가며 제작한 작품을 선보인다. 조각 ‘Cloud Walker’와 ‘과거 현재 미래’ 등이 이색적인 재미를 선사한다. 무료 관람(02-735-8449).
고궁과 박물관 나들이하기
문화재청은 경복궁 덕수궁 창경궁 창덕궁 등 궁궐과 종묘, 조선왕릉을 추석날 하루 동안 무료 개방한다. 18일과 20일에는 한복을 입은 관람객들은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18∼20일 중에 관람객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한가위 문화행사도 마련했다. 덕수궁 즉조당 뜰 앞에서 경기민요 공연 ‘덕수궁 가무별감, 얼씨구! 좋다! 잘한다!’가 열리고, 조선왕릉에서는 투호, 윷놀이 등 민속놀이 체험과 전통 차 나눠주기 행사가 진행된다.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은 기획특별전 ‘이슬람의 보물-알사바 왕실 컬렉션’ 무료 관람 행사를 실시한다. 18∼20일 부모와 함께 전시장을 찾는 가족(청소년 이하 자녀 4명까지)은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쿠웨이트의 왕실인 알사바 가문에서 수집한 유물 중 8세기부터 18세기까지 이슬람 미술을 대표하는 367점의 보물이 공개되는 전시다. ‘보물을 모아라! 도장찍기’ ‘이슬람 전통의상 체험’ 등 이벤트도 진행된다(02-2077-9000).
서울 경복궁 내 국립민속박물관은 ‘박물관에서 즐기는 추석 명절-풍요로움을 이웃과 함께 나누어요!’ 행사를 개최한다. 19∼21일 박물관 앞마당에서는 가족 대항 노래자랑대회가 진행된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쉼’ 특별전, 어린이들을 위한 ‘세계 민속악기 악기야! 안녕?-다문화꾸러미 전시’, 전래 동화 ‘흥부전’ 등이 마련된다. 19∼20일 박물관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송편을 무료로 제공한다(02-3704-3114).
지역 미술축제에 참가하기
서울 삼청로 일대(사간동, 소격동, 송현동, 화동, 안국동, 팔판동, 삼청동)에는 미술관과 갤러리가 65개나 있다. 이곳에서 제9회 삼청관광미술제가 열린다. 각 화랑이 기획한 전시를 관람하고 이 일대에 설치된 20여점의 조형작품도 볼 수 있다. 이곳 갤러리와 박물관, 음식점, 카페 등에 한글과 영문이 병기된 문화지도가 배치됐다. 동전을 그리는 노재림 작가의 ‘들여다 보다’(갤러리 도올) 등 전시가 눈길을 끈다(02-739-1405).
부산 송도해수욕장에서는 ‘2013 바다미술제’가 열린다. ‘With 송도: 기억·흔적·사람’을 주제로 미국 태국 캐나다 등 총 11개국 작가의 34점을 선보인다. 개장 100주년을 맞은 송도해수욕장과 26년의 연륜을 가진 바다미술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탐구를 다룬 작품들이 출품됐다. 송도해수욕장에 있었던 ‘총각집’이라는 선술집을 재현한 손몽주 작가의 작품 등이 흥미롭다. 야간 관람을 위한 조명시설이 마련되고, 예술가들이 참여하는 아트마켓도 열린다(051-503-6111).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