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급 대학 스타들 쑥쑥… 제2 농구 붐 바람몰이
입력 2013-09-15 17:17 수정 2013-09-15 23:34
‘한국농구 어게인1990!’ 한국농구가 살아나고 있다. 지난달 아시아선수권에서 16년 만에 월드컵대회 진출이라는 낭보를 전하는가 하면 프로-아마농구 최강전에서는 아우들이 형님들을 제치고 ‘코트의 반란’을 주도했다. 이 대회에서 이종현-이승현-박재현-문성곤 등을 앞세운 고려대가 프로팀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며 ‘농구대잔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나아가 고려대는 15일 경기도 화성 수원대체육관에서 열린 2013 KB국민은행 대학농구리그 챔피언결정전 결승전에서 대회 3연패를 노리는 경희대를 74대 71로 꺾고 사상 첫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대학농구 인기 중심에 있는 이종현(2m06)은 최우수선수(MVP)에 뽑혀 가능성을 다시 확인했다.
◇오빠부대의 집결지 농구대잔치=스포츠는 스타를 먹고 산다. 월드컵의 흥행으로 국내 프로축구가 발전했고 올림픽과 WBC(윌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 야구대표팀이 좋은 성적을 거둬 프로야구 열풍을 일으켰다. 농구에도 기회가 왔다. 당장 내달 12일 개막하는 2013∼2014시즌 프로농구에서 선수들은 인기 몰이를 준비하고 있다. 내년 8월30일에 열리는 스페인 세계선수권대회도 놓칠 수 없다.
1980년대부터 시작된 ‘농구대잔치’는 90년대에 이르러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실업팀과 대학팀이 함께 순위 싸움을 하는 이 대회에서 각 대학의 꽃미남 선수들은 ‘오빠부대’를 이끌고 다녔다. 당시 연세대에는 서장훈 이상민 문경은 우지원이 있었고 중앙대엔 허재 강동희 김유택 한기범이 연예인 인기를 능가했다. 예상치 못한 농구대잔치의 인기는 TV드라마 ‘마지막 승부’의 높은 시청률과 함께 투자에 소극적이었던 기업의 마음을 움직여 프로농구팀을 창단하게 만들었다. 97년 첫 발을 디딘 프로농구는 64만명의 관중을 동원해 성공적인 출발을 보였다.
하지만 우물 안의 개구리였다. 프로농구가 안방에 머물러 있는 동안 야구와 축구는 세계무대로 나아갔다. 야구 대표팀은 제1회 WBC 4강(2006년)과 제2회 WBC 준우승(2009년)의 호성적으로 국내 야구의 인기를 드높였다. 지난해 국내프로야구는 사상 최초로 관중 700만 시대를 열었다.
프로 농구는 제자리를 맴돌았다. 토종 스타들이 사라진 코트엔 외국인 용병들이 활보했다. 급기야 ‘져주기’ 등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이더니 결국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했다.
◇‘3무’에서 16년 만에 기적을 낳다=지난달 1일부터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유재학 감독이 이끄는 농구 대표팀이 3∼4위 결정전에서 대만을 75대 57로 완파하며 하려화게 피날레를 장식했다. 한국은 2014년 스페인 농구월드컵 막차 티겟을 확보했다. 한국이 세계무대에 진출하게 된 것은 1998년 그리스 세계농구선수권 대회 이후 무려 16년만이자 국내에 프로출범 이후로 사상 처음이다.
비록 준결승에서 아쉽게 필리핀의 벽에 막혀 아시아정상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유재학호’가 이번 대회에서 이룬 성과는 충분히 평가받을만한 업적이다. 유 감독은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 지난 6월 초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첫 출발을 할 때는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무관심, 무책임, 무방비의 ‘3무’ 그 자체였다. 최종 엔트리 12명 중 무려 5명은 경험이 부족한 대학생 선수로 충원해야했을 만큼 역대 최약체 대표팀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유 감독은 좌절하지 않았다. 지난 7월 대만에서 열린 존스컵은 한국 농구의 허약한 현주소를 절감했다. 동시에 보약도 됐다. ‘압박 수비’와 ‘벌떼 전술’을 바탕으로 한 시스템 농구를 가동할 수 있게 됐다. 유재학과 12인의 전사들은 40분 내내 끊임없는 수비전술 변화로 상대를 압박했다.
◇이종현-김종규-김민구 농구인기 재현한다=이번 대회에서 한국농구가 배출한 최고의 스타는 단연 김민구(경희대)다. 그의 담대함과 클러치 능력에 열광한 팬들은 NBA 스타를 빗대 ‘민구 브라이언트’라는 애칭을 붙여줬다. 그의 등장은 이충희와 허재 이후 국제무대를 주름잡는 토종 에이스의 활약에 굶주렸던 농구팬들은 마침내 탄성을 질렀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선물은 ‘괴물’ 토종 센터 김종규(경희대)와 이종현이다. 둘은 서장훈과 현주엽을 빼닮았고 한국 농구의 미래를 이끌어갈 듬직한 대들보로 자리매김했다. 이들은 대선배인 김주성, 이승준(이상 동부)과 짝을 이뤄 적극적인 골밑 움직임과 몸을 사리지 않는 허슬플레이로 위기에 빠진 한국농구를 구해냈다. 문성곤(고려대), 최준용(연세대)도 종횡무진 코트를 누볐다. ‘한국농구 부활’은 이제부터다.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