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정승훈] 귀성
입력 2013-09-15 18:25
귀성(歸省)이란 객지에 사는 자녀가 부모를 만나러 고향에 가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의 한국세시풍속사전에 따르면 귀성이란 말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시기는 해방 이후다. 해방 이후부터 설날과 추석 같은 명절에 집에 가는 것을 가리켜 신문에서 귀성행렬 혹은 귀성열차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 이후 자녀를 도시에 설립된 학교로 보내 교육을 시키는 일이 늘어났고 고향을 떠나 정착해 사는 경우도 증가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실 이전까지만 해도 전통적인 유교식 교육은 자택 인근의 서당이나 서원 등에서 행해졌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직업을 갖고 정착하는 일도 많지 않았다. 귀성이란 말 자체가 급격한 근대화의 산물인 셈이다.
음력 8월 15일인 추석 즈음은 전 세계적으로 축제가 열리는 시기다. 명칭과 시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한·중·일 등 동아시아 지역 외에 서구와 동구, 아프리카에도 수확의 풍요로움을 가족이나 이웃과 나누는 축제가 열린다. 하지만 우리처럼 수확 축제 시기에 귀성행렬이 이어지는 곳은 많지 않다. 미국과 일본 정도에서 비슷한 귀성행렬을 찾을 수 있다. 중국의 경우 춘제(春節)로 불리는 설날 귀성행렬은 어마어마하지만 추석 즈음에 귀성행렬을 보기는 힘들다.
미국의 추수감사절은 11월 마지막 주 목요일에 시작된다. 추수감사절 기간 중 고향을 찾는 인파가 3000만명을 넘는다고 하니 미국 인구 10명 중 1명 이상은 이 기간 귀성행렬에 동참하는 셈이다. 일본의 경우에는 양력 8월 15일 즈음인 ‘오봉(お盆)’을 전후로 상당수 일본인들이 고향 방문길에 오른다. 2000여만명이 고향 방문이나 성묘를 하러 나선다고 하니 큰 명절이다.
시골 읍이 고향이다 보니 대학 시절 이후 20여년간 설과 추석 연휴마다 귀성행렬에 몸을 실었다. 입석으로 통일호 기차를 탄 채 6시간을 넘게 한 자리에서 꼼짝도 못하고 서 있었던 적도 있었다. 객실 통로조차 사람과 짐으로 꽉 막혀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결혼 후 아내와 둘이서 고속버스로 귀성행렬에 올랐다가 13시간동안 버스를 탔던 경험도 있다. 저녁 즈음 버스에 올랐는데 밤을 꼬박 지내고 오전 8시에야 버스에서 내릴 수 있었다.
도로 사정이 예전보단 나아졌지만 그래도 귀성행렬이 길다 보니 평소보단 고생스러울 것이다. 귀성객들 모두 마음을 여유롭게 갖고 큰 사고 없이 편안하게 다녀오기를 기원한다.
정승훈 차장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