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민태원] ‘바보 공공병원’의 착한 실험
입력 2013-09-15 17:33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는 ‘공공의료’의 핫이슈였다. 당시 의료원 폐업의 가장 큰 이유는 ‘적자’였다. 홍준표 경남지사에게는 사회 각계의 비난의 화살이 쏟아졌다. 공공의료기관의 존재 이유를 경영수지 잣대로만 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어렵긴 마찬가지지만 병원 문을 닫는 대신 새로운 공공의료의 길을 찾아나서고 있는 서울의 한 공공병원이 있어 대조를 이룬다.
서울 중랑구에 위치한 서울시립북부병원은 지난 4월부터 의료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301네트워크’ 서비스를 시작했다. 의료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보건·의료·복지 세 가지 서비스를 하나로 묶어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것으로 국내 최초로 시도되는 공공의료 실험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역 구청, 주민센터, 보건소, 복지관 등 유관 기관이 관리하는 취약계층 중 의료적 문제가 있는 대상자가 발견되면 곧바로 이 병원 ‘301네트워크’로 의뢰한다. 그러면 권용진 원장을 비롯한 의사·간호사·영양사·사회복지사가 한 팀을 이뤄 대상자를 직접 찾아가 치료 계획을 세우고 진료, 입원, 수술, 방문간호 서비스를 제공한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간병비 보조, 도시락 배달, 주거 이주, 사회보장제도 연결 등 치료 후 정상적 사회 복귀를 위한 지원까지 해 주는 게 특징이다.
301네트워크 출범 4개월간 참여 기관 수는 36곳으로 늘었고, 의료급여 1종부터 건강보험 대상자까지 70여명이 병원을 이용했다고 한다. 환자들이 내야 하는 진료비는 없다. 한 기업 단체가 3년간 매년 1억1500만원씩 후원하기로 했다는 것. 복지기관들은 “그동안 의료 개입이 절실히 필요함에도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아 병원 문턱을 넘을 수 없었던 이들이 의료비 걱정 없이 진료받을 수 있어 다행”이라며 반기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이 모델을 시 차원으로 확대해야 한다며 적극 관심을 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무소속 안철수 의원도 최근 이 병원을 직접 방문, 301네트워크를 직접 체험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북부병원의 착한 실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통상 몸이 아파 병원을 이용할 경우 최소 30분 이상 대기는 기본이며, 3분 이상 진료를 받아본 경험은 흔치 않다. ‘30분 대기, 3분 진료’는 우리나라 의료 환경을 대변하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병원은 지난 5월 중순부터 ‘3분 대기, 30분 진료’를 표방하고 나섰다. 초진 환자는 30분, 재진 환자는 10분 진료를 통해 충분한 진료시간을 확보했다. 넉넉한 진료시간을 통해 환자를 정확히 진단하고 진료할 수 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환자도 자신의 증상에 대해 자세히 말할 수 있어 둘 다 만족스럽다고 한다.
문제는 ‘돈’이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 진료하다 보니 하루에 볼 수 있는 환자는 30명 남짓. 똑같은 자원을 활용하는 민간 병원에서는 이 시간 동안 100명은 족히 진료하고 남을 시간이다. 요즘 같은 수익 위주의 의료계 환경에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적자가 불 보듯 뻔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병원이 착한 실험을 계속하는 것은 취약계층을 위한 필수 공공의료 제공이라는 명분과 환자 중심 양질의 의료 서비스 제공이라는 목적에 충실하고자 했기에 가능하다.
운영을 할수록 적자만 쌓이는 병원. 공공병원이 ‘바보 병원’으로 불리는 이유다. 하지만 공공병원이 ‘바보 같지만 꼭 필요한 곳’이며 분명히 나아갈 길이 있음을 북부병원이 보여주고 있다.
민태원 정책기획부 차장 tw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