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이웃의 추석] 신학 공부 중인 중국 동포 이지은 집사

입력 2013-09-13 19:02 수정 2013-09-13 19:15


손녀 한번 안아봤으면… 참고 견뎌야죠

13일 법무부 출입국 외국인정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7월 말까지 국내 거주 외국인은 총 154만2211명에 달한다. 이들 가운데 맞벌이 가정에 상주하는 중국동포 도우미, 회사 식당에서 서빙하는 아줌마, 건설현장 인부 등 주로 3D 업종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는 52만여명(2013 안전행정통계연보). 대한민국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지만 잘 보이지 않는 그들이다. 추석 명절을 앞둔 지금 주변의 그들에게 한번쯤 시선을 옮겨보는 건 어떨까.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아들과 딸의 만남을 간절히 손꼽아 기다리는 그들을…. 추석의 설렘 대신 외로움을 안고 있는 ‘조금 특별한 이웃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8일 오후 4시, 서울 가리봉동 동포사랑교회(담임 이순기 목사). 예배가 끝난 뒤였지만 소수의 중국동포들이 남아 신학 공부를 하고 있었다. 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영등포노회 소속 성서신학원 분원으로 중국동포만 다니는 ‘동북아성서신학원’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단아한 중년 여성이 눈에 띄었다. 내년 초 졸업을 앞둔 이지은(가명·55) 집사다. 그는 20년 전 전도를 받아 중국에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왔다.

헤이룽장성 출신의 이 집사가 한국에 온 건 2007년. 한국에서 신학 공부를 하는 아들이 보고 싶어 따라 나왔다. 18년 전 남편과 이혼한 뒤 홀로 아들을 키운 그는 아들을 멀리 보내놓고 매일같이 눈물로 기도했다.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셨어요. ‘아들도 나의 종이므로 가서 섬기라’. 당장 아들에게 한국에 가겠다고 전화했지요. 아들은 ‘신학 공부를 하려면 오고 뒷바라지하러 올 거면 오지 말라’고 했어요.”

막상 아들을 만나자 초췌한 모습에 눈물부터 났다. 한국에 오자마자 식당에서 일하며 아들부터 챙겼다. 아들이 출석하는 교회 목사님이 성서신학원에 다닐 것을 권면해 한 학기 다녔다. 그러나 어려운 형편에 자신까지 공부를 하는 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자신은 아들을 돕기로 하고 입주 아기돌보미로 취직했다. 그 사이 아들은 공부를 마치고 선교를 위해 중국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난해 결혼했고 두 달 전에는 예쁜 딸까지 낳았다.

이 집사는 계속 한국에 남았다. 다시 시작한 신학 공부를 마치기 위해서다. 월급이 적더라도 주일성수와 신학 공부를 위해 근무시간이 짧은 가정탁아일을 한다. 몸은 고되지만 그는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처음 식당에서 일할 때는 언어가 달라 한국 사람들이 편견을 갖고 대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다 보니 힘든 일도 많았고요. 신학원 다닐 때는 모두 잘해주고 도와주려고 했지만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어요. 저 스스로 벽을 쌓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 벽을 허문 건 동포사랑교회 공동체를 통해서다. 중국동포만 출석하는 교회에선 서로 통하는 게 많았다. 자연스레 격려와 위로가 오갔다. 같은 문화와 관습을 누리니 허물이 없고 마음이 편했다. ‘동포사랑치과’에서 무료 치과 진료를 받고 ‘희망나눔가게’를 통해 의류와 물품을 저렴하게 구입하기도 했다. 복음 전파뿐 아니라 물심양면으로 중국동포를 돕는 모습에 그는 감동했다.

“추석은 중국에서도 3대 명절 중 하나입니다. 중국에 있었다면 온 가족이 모여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재미있게 지냈을 텐데….”

명절 계획을 묻자 그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에 눈시울을 붉혔다. 특히 이번 추석 명절이 더 애틋한 건 태어나 한 번도 품에 안아보지 못한 손녀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다. “하지만 참고 견딜 겁니다. 나중에는 아들네와 함께 살겠지만 건강이 허락하는 한 걸림돌이 되지 않는 어머니, 기도하는 어머니, 경제적으로 자립하는 어머니의 당당함을 보여주고 싶어요.”

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